Red And Blue

오버워치 드림 커미션 | 야오웨 × 안란
◈ ◈ ◈
침묵이 감도는 탈론의 한 의무실에는 침대와 흑발의 두 여성이 있다. 둘의 다른 점이라면 한 사람은 침대에 누운 채로 결박당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곁에 서서 ‘잠들어 있는’ 상대의 모습을 관찰할 뿐이었다.
“란란.”
묵묵부답.
심술이 담긴 창백한 손—붕대로 뒤덮인, 가늘고 창백한 손—이 조용히 누워 있는 안란의 얼굴을 향해 뻗었다. 창백하지만 온기가 담긴 손가락이 안란의 눈꺼풀 위에서 춤추며 그의 눈꺼풀을 움직이며 동공 반응을 확인하려 들었다.
무겁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떨리며 간신히 열렸다.
“···야오웨.”
“깼어? 눈 뜨자마자 본 게 나라니, 뭔가 기분이 간질거리네.”
“이게 무슨 짓이야?”
“미안해, 란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저항이 거셀까 봐 그랬어. 실수로 네가 다치는 건 정말 싫거든.”
“지금 네 이런 행동이야말로···아니야, 야오웨. 탈론이 무언가 네게 강요한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여전히 내가 네 가르침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열등생이라고 생각해? 나는, 나는 네 곁에 설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을 가지고 싶어서···!”
야오웨는 진심으로 순간 북받친 감정을 애써 씹어 삼키려 했다. 됐어, ‘그’ 안란은 이런 감정 따위 알 수 없겠지. 대단한 안란, 뛰어난 안란, 우등생 안란. 그건 전부 나에게서 가장 동떨어진 수식어들이고, 그런 네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서 선택한 게 이 모양이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내 절박함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야, 란란. 네가 내게 주었던 가르침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어쩌면 너도 이로써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응?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킨 야오웨가 곁눈으로 안란이 묶여 있는 침대의 모서리를 훑었다. 그 모서리 중 오른쪽에는 간이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야오웨가 안란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 놓여 있었다.
안란을 위해?
정정한다, 그건 야오웨를 위한 것이었다. 야오웨의 이기적인 마음은 안란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적어도 야오웨가 생각하기에는 그러했다. 간이 탁자 위의 내용물을 파악한 안란이 나지막히 입을 열어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을 꺼냈다.
“야오웨, 뭘 하려는 거야?”
“어째서 예전처럼 샤오린, 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거야?”
“······.”
지금 이 상황에서 정말 그게 중요한가? 안란은 몇 초간 벙쪄있었다. 야오웨, 너 지금 나를 납치했잖아. 보아하니 탈론의 의무실 중 하나 같은데. 여기서 무얼 할 속셈이지? 그 주사기들은 전부 뭐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를 정말 다치게 할 정도로 망가진 거야, 샤오린?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열등생인 나는 그럴 능력이나 다짐이 없을 것 같은 걸까. 란란, 그 정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 네가 나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데.
나는 알려주고 싶은 거야. 내가 느꼈던 감정, 느끼는 감정, 그리고 느낄 감정들 전부를. 네가 내 마음을 알 리가 없잖아? 내가 어떤 생각으로 탈론에 들어왔는지와 같은 걸 말이야.
간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주사기 중 가장 굵은 바늘이 달린 주사기가 야오웨의 손에 들렸다. 주사될 준비가 된 그것은 일말의 찰랑임조차 보이지 않았고, 안란이 무어라 항의하기도 전에 바늘이 팔에 꽂혔다. “윽!” 하는 안란의 외마디 비명에 야오웨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갔다.
“안란, 괜찮아. 너는 이런 것조차 나보다도 더 잘 버텨낼 수 있잖아?”
“너···지금 뭘,”
“일시적으로 기를 막는 약물이야. 네가 날뛰기라도 하면 곤란해지거든. 아까 말했듯이, 네가 실수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고의로는 괜찮다는 거야?”
“······.”
야오웨는 조용히 다음 주사기를 들었다. 거기에는 반투명한 푸른 액체가 담겨 있었고, 안란은 여전히 주사기들의 나열에서 그 어떠한 것도 성분이나 정체를 구분해 낼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건 전부 야오웨 역시 주입 당했던 적이 있는 약물들이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만들고 부숴버린 걸까, 야오웨. 나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이 상황이 아니야. 너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탈론과, 네가 고통받아야 했다는 현실이 끔찍하게 슬플 뿐이야.
파란 약물이 조용히 혈관을 타고 흘렀다. 퍼져 나가는 약물은 사고를 느리게 만들고, 대상을 침잠하게 만든다. 야오웨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조감, 상황을 이렇게까지 손을 놓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 야오웨도 이런 감정을 느꼈던 걸까. 네가 침잠하면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자신을 너무 박하게 평가하고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차라리 나를 향한 열등감이나 날을 세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
기를 막았음에도 안란은 지독하게도 따뜻한 사람이었고, 그 마음을 짐작한 야오웨의 얼굴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아, 이 약물은 놓지 않는 게 나았으려나. 그 작은 후회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붉은 약물이 담긴 주사기가 야오웨의 손에 들렸다. 그렇다면 차라리 네 의식을 꺼트리는 게 낫겠어, 란란. 어설픈 동정은 애매모호한 감정만을 키울 뿐이니까.
붉은 약물의 주사기는 가장 가는 바늘이 꽂혀 있었다. 주사가 놓인 순간 안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 하나하나가 불타기 시작하는 감각에 빠져들었다. 꺼지지 않는 화염이 전신을 휩쓰는 감각에 안란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고, 야오웨는 조용히 그런 안란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기분이 어때, 안란?”
“···슬프고 안타까워.”
“탈론에 들어가야만 했던 나의 능력이?”
“아니, 그냥 너라는 사람이.”
예상치 못한 답변에 야오웨는 눈을 크게 뜨고 깜빡이더니 이내 안란과는 다른 이유에서 슬픈 눈을 하며 가라앉은 표정이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란의 체감상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났고, 어느 순간부터 극심한 이명과 함께 안란의 귀와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안란은 끔찍한 두통이 자신의 의식을 흐리는 것을 느꼈다. 의식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 안란은 야오웨의 흐릿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렸음을 기억한다. 자신의 눈을 덮은 그의 손은 마치 이 모든 게 끔찍한 악몽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만 같았다.
“괜찮을 거야, 란란.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럼에도 네가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를. 나를 잊지 않기를.
야오웨는 슬픈 눈으로 기절한 안란의 입술에 작게 입을 맞추고 의무실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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