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의 뒤
REVERSE: 1999 | 마커스 + 이니그마
◈ ◈ ◈
_그레타의 첫 기일에 마주친 삼촌조카
◇
늘 소란스러운 라플라스의 가운데 유난히 적적한 연구실이 하나 있다.
그래, 익히 알고 있는 아들러 호프만의 연구실이다. 그가 라플라스 총책임자 대행의 자리를 맡은 이후로는 자주 들르지 않아 먼지가 수북하다.
다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방의 주인은 조명 하나 키지 않은 방에서 멍하니 쌓인 먼지와 서류 더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누가 정적을 깬 거지?
아들러는 머리를 헝클이며 한 소리를 할 각오로 문을 벌컥 열었다. 급한 일이라도 생겨서 나타났을 자성 유체나 다른 연구원들을 상상한 아들러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시선을 아래로 기울이니 조그만 소녀가 보인다. 늘 커다란 책을 끼고 다니며 두꺼운 외투에 파묻힌 소녀다.
순간 짜증을 내려던 아들러의 미간이 풀어진다.
"마커스?"
"아, 호프만 씨. 제가 방해한 걸까요···?"
우물쭈물하던 마커스가 조심스레 묻는다. 성정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원하지 않는 방문은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보다 아들러라고 불러도 된다니까."
"죄송해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됐어, 뭐라 하려고 한 건 아니니까. 무슨 일이야?"
"······."
작은 침묵이 둘 사이를 휩쓴다.
조금 멍한 아들러의 표정을 살피더니 마커스가 입을 열었다.
"그···호프만···그레타 씨, 기일이니까요."
"······."
생각보다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사려깊은 누나의 제자가 그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데도 상냥하게 배려하려고 해서일까.
여전히 현실감 없는 현실이 들이밀어져서인지, 입 안쪽에서 쓴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소 침통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마커스가 횡설수설하며 말을 이었다.
"하, 한 명이라도 더 떠난 이를 함께 기억하며 있어주면 큰 위로가 된다고 책에서 읽었어요. 주변에서 이렇게, 그러니까 바로 옆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낸 건···처음이었어서요."
"그래?"
"···실은 제가 그렇게 느껴서 무턱대고 찾아왔어요. 염치 없죠?"
"뭐? 전혀."
"죄송해요."
고개를 푹 숙인 마커스의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제 탓이 전혀 아닌데도.
아들러는 상냥하게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타입이다. 제 앞의 누나의 어린 유산 앞에서 쩔쩔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아니, 고개 들어. 자책하지 말라니까?"
"그렇지만."
"재활 센터에는 제대로 다니고 있는 것 맞나? 여전히 안 괜찮으면 이야기하는 게."
"아, 아뇨! 제대로 다니고 있어요. 이런저런 것까지 다 해서···앗! 이게 아니지. 그냥···그레타 씨 기일이 다가오니까 기분이 가라앉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호프만···아들러 씨도 그렇지 않나요? 소중한 가족이잖아요."
가족.
그렇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서로만이 남겨졌던 유일한 혈육. 죽고 못 사는 사이까지는 아니였지만, 서로에게 큰 일이라도 나면 달려올 법한 그런 사이.
"···네 말이 맞아. 누나가 그런 것도 가르쳐 줬나?"
"그레타 씨는 제가 나아갈 방법을 전부 알려주셨죠. 저는 아직 멀었지만, 그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고요."
"좋은 제자를 뒀네, 누나는."
"······."
나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지? 아들러는 순간 아차했다. 저보다 한참 어린 소녀의 얼굴에서 씁쓸한 미소를 읽은 후였다.
아들러는 고개를 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누나 생각이 나서 잠깐 혼자 있었던 거야. 이 연구실 꼴 보여? 먼지 한 톨 치우지 않고, 너저분하잖아. 그만큼 바빴어, 나는. 라플라스 책임자 자리라는 건 이름만큼이나 거창하고 바쁜 일이더군. 그래서 그만큼 누나의 죽음을 곱씹을 정신조차도 없었다고."
"···네."
"그런데 그 탓인지 누나의 기일이 다가오니까 확실히 더 이상 없다는 게 실감이 나서, 나는."
아들러는 형용할 수 없는 제 감정을 묘사할 단어를 머릿속에서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이해해요. 계속해서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형체화시킬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도 존재하더라고요."
"···그래."
"그···그래서, 흰 국화를 준비했는데, 괜찮으세요···?"
"고마워."
아들러는 조심스레 내밀어진 국화를 쥐었다. 둘은 침묵 속에서 라플라스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세계가 역행하는 터무니없는 세상 속에서 제대로 된 무덤을 마련할 방법은 만무했지만, 기억하는 이들이 세운 묘비는 있었기에.
◇
"···누나, 나···우리 왔어."
"오랜만이에요, 호프만···그레타 씨."
"대단한 제자를 뒀어, 참. 나는 올지 말지 고민했는데, 이 녀석이 날 떠밀었다니까?"
"그···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아니였어도 아들러 씨는 오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냐, 솔직히 고민했어. 확실히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다 싶어서."
"······."
두 사람은 묘비 앞에 들고 있던 국화를 내려놓았다.
"식사는 했나?"
"네? 네···!"
"그래? 그럼 커피라도 대접하도록 하지. 아니, 애들은 안 마시나?"
"아···그."
"디저트는 괜찮나?"
"네···! 가능하다면 자허토르테요.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