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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hal
REVERSE: 1999 | 메디슨 포켓

◈ ◈ ◈


 

_이번에는 진정제 OD를 한 메디슨 포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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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연구를 하는 메디슨 포켓의 최근 관심사는 안정제였다. 보편화된 각성제(커피이다)를 늘상 들이키는 것은 그의 습관이었고, 그것은 때때로 불유쾌함을 끌어올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그에 대응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끓어올랐다.

 

안정제, 안정제라.

 

죽음은 영원한 잠이라고 하지 않던가? 죽음을 위한 예행연습으로써 생물들은 수면을 취한다. 죽음이란 그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뿐, 그리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다. 다만 자신은 이 짧은 생애동안 할 일이 많기에 당장 죽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늘상 연구실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깊은 잠은 달콤하게 느껴진다. 쉽사리 취할 수 없는 것은 이상적이고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안정제는 그것을 보조할 수 있는 도구이자, 앞으로의 의료계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폭풍우가 몇 번을 지나가더라도, 이 곳에서는 온전히 자료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

 

메디슨 포켓은 그렇게 수 개월간 연구실에서 골몰했다. 기존에 하던 연구와 병행한 그에게 주어진 쉴 틈이라고는 퇴근 직후 침대에 스스로를 내던진 수면이 유일했다. 그러나 스스로의 선택이니, 메디슨 포켓은 그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라플라스 포럼]

 

요즘은 메디슨 포켓이 실험실 잘 안 터트린다?

└ 듣기로는 신약 개발 중이라던데?

   └ 전에 한 번 투여량 삐끗내서 난리나지 않았음? 깡도 좋네.

└ 최근엔 아예 본인 연구실 문에 방해 금지 붙여뒀던데?

   └ 원래 그거였어? 나 아까 봤는데 누가 그 위에 마커로 죽죽 긋고 개조심 적어둠;

      └ 틀린 말은 아니긴 함

      └ 신경 쓸 겨를도 없을 정도인듯? 평소 같으면 바로 CCTV 돌려서 범인 찾아서 물어뜯었을 텐데

└ 다들 한가한가 봐? 가십이나 할 시간에 정신병동에 환자 좀 줄일 생각이나 했으면 좋겠네.

   └ 으악 메스머 주니어다

   └ 왜? 나는 재밌는데. 가끔 라플라스에서 이런 싸구려 도파민 제공도 해줬으면 좋겠어.

      └ 도파민 중독자 어서오고

 

 

"여어, 메디슨 포켓. 요즘 얼굴 보기 힘드네?"

 

청록빛의 멜루진이 탕비실에 들어온 메디슨 포켓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어, 그래도 이제 곧 막바지거든."

"그래서 나왔구나? 요즘 라플라스 포럼에서 네가 웬일로 사고를 안 친다고 걱정하는 지경까지 왔다니까."

"하? 그딴 일이 있었어?"

"그래. 덕분에 어제 스레드 보면서 도파민 충전했다니까?"

"그건 쓰레기 도파민이라고, 2호!"

"시끄러워, 가끔은 싸구려 영양분도 먹어야 내가 살아."

 

몇 달 전보다 더 짙어진 다크서클 위의 금빛 눈동자가 굴러간다. 저 녀석들은 여전하네. 히사베스는 탕비실에 비치된 감자칩을 제 형제의 입에 넣어주며 투덜거림을 막았다. 메디슨 포켓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커피잔을 쥐었다.

이윽고 평소에 마시던 것보다 2배는 더 진하게 탄 커피의 풍미가 잠을 쫓아냈다.

 

"난 간다."

"알았어, 신약 효과 괜찮으면 나한테도 좀 주라."

"그래."

 

메디슨 포켓은 투닥거리는 9마리의 뱀을 뒤로하고 탕비실을 나왔다. 진정제를 개발하기 위해 각성제를 마시는 꼴이란. 모순적인 제 상태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 메디슨 포켓은 작게 실소했다. 그래도 곧이다.

연구실에 들어선 그는 잠시 주저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오히려 이 상태인 게 적격일지도 모르겠다. 수면 보조제의 용도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사용할 수는 있으니까. 어차피 첫 실험대상은 메디슨 포켓 본인이다.

 

 

정제가 끝난 연보라색의 캡슐 알약들이 메디슨 포켓을 마주한다. 이전처럼 여러 가지로 분리해 만들 필요가 없는 구조여서 하나의 약물로 완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의도한 효과는 진정—즉, 불안, 경련, 긴장을 소거시키는 역할. 또한 수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부작용은 악몽, 의식불명, 혼수상태, 혹은 쇼크로 인한 죽음.

뭐, 흔히 보일 법한 진정제 효과의 리스트이다.

 

응축되고 희석된 죽음.

 

메디슨 포켓이 손에 한 알을 들고 빙글대며 돌려본다. 작은 유광의 캡슐은 형광등의 빛을 유려하게 비추며 금빛 눈동자를 마주본다. 몇 달에 걸친 결과물이 사랑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다.

그간 쌓인 피로도를 고려해서 계산한 최대 투여량은 10알분.

 

적정량?

 

그것은 자신에게 행한 실험이 끝나면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메디슨 포켓은 스스로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죽을 정도로 약물을 남용한 적은 없었다. 아마도.

의자에 앉은 메디슨 포켓은 10알의 진정제를 입에 털어넣어 삼켰다.

 

 

눈을 뜨니 여전히 자신의 실험실이다. 눈 앞에 널부러진 연보라색의 캡슐 알약들과 계산식이 잔뜩 쓰인 종잇장들.

 

하지만 실험 경과를 적은 것은 어디 갔지? 그걸 쓸 기회가 없을 만큼 효과가 강했나? 바로 의식을 잃었을 리가 없는데. 그런 것 치고도 몸은 굉장히 가뿐해서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발 조심해요, 37."

"응."

"뭐야?"

 

메디슨 포켓이 뒤를 돌아보니 37과 X가 자신의 실험실에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적막한 실험실에 울려퍼졌고, 37은 책상에 놓인 메디슨 포켓의 계산식을 관찰했다.

 

"···무리수인 친구가 또 떠나버렸어. 내가 더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신 탓이 아니예요, 37. 자책하지 마세요."

"무슨 소리야? 나 여기 있거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37과 X의 눈 앞에서 메디슨 포켓이 손을 휘휘 저었다. 하지만 그 둘은 그런 메디슨 포켓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로 숙연한 분위기였다. 이내 실험실에 메스머 주니어 역시 발을 들였다.

 

"······언젠간 이렇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무리수는 우리 곁에 있기엔 너무나도 자유분방하고 불규칙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이 틀렸다는 건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나 여기 있다고."

 

인내심을 잃은 메디슨 포켓이 제 친구들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메디슨 포켓은 철렁했다.

 

"하, 하하."

 

메디슨 포켓은 의미 없는 희망을 품을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죽은 거네, 나. 이딴 식으로 허무하게 실패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영혼이라는 게 실존하긴 하는 거였구나? 어디 사후 세계로 끌려가지만 않는다면 의식 각성자마냥 어떻게 방법이 없으려나. 내 육체는 죽었지만, 의식은 멀쩡히 여기 있다고.

어림도 없다.

 

메디슨 포켓은 의자에 스스로를 던졌다.

짜증나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육체가 없으면 연구도 못 하잖아? 제기랄! 이렇게 일찍 죽을 계획은 없었는데,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잠깐, 악몽?

 

"—!!!"

 

부작용, 부작용···분명 악몽이 있었다.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메디슨 포켓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물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실험실을 뛰쳐나갔다.

 

 

"메디슨 포켓!!!"

"······뭐야, 멀대 아재? 아!"

"아들러! 이 녀석 아직 환자라고, 진정 좀 해!"

"진정이 되겠냐?! 지금 바이오 부서장을 새로 뽑을 뻔했다고!"

 

꿀밤을 한 대 맞은 메디슨 포켓이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났다. 눈 앞에는 라플라스 책임 대행과 자성 유체가 있었다.

 

"이딴 미친 짓을 하는 건 내 인생에 의식 각성자 둘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는데 이젠 너까지 이러는 거냐?!"

"······."

 

아들러의 일갈에 메디슨 포켓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어쨌든 일어났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들러! 메디슨 포켓!"

 

옆에서 울리히가 둘을 향해 호통쳤다. 하지만 메디슨 포켓의 실책은 확실했기에, 자성 유체 역시 메디슨 포켓에게 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메디슨 포켓, 스스로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한 건진 자각하고 있나?"

"어. 그래도 악몽 정도에서 그치고 일어나서 다행이네."

"다행? 지금 1주일 동안 의식불명이었던 건 모르고 있군."

"뭐?!"

 

메디슨 포켓이 펄쩍 뛰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거 조금 무리했다고 정말로 골로 갈 뻔했다고?

 

"잘 들어, 메디슨 포켓. 스스로에게 실험하는 건 막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규제할 수 밖에 없어. 이렇게 마음 졸이는 일은 지긋지긋하다고!"

"알았어, 알았어. 나 피곤하니까 나가줄래? 안 그래도 반성하고 있다고."

"그래, 아들러. 환자잖나. 책임은 회복하고 나서 따져도 늦지 않아."

"하···."

 

그 말과 함께 아들러는 울리히에게 떠밀리듯이 병실에서 쫓겨났다.

마른세수를 한 메디슨 포켓은 습관대로 옆에 놓인 검사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말 위험했네."

 

하지만 정말로 악몽과 일시적인 의식불명에서 그친 게 다행이다. 메디슨 포켓은 그런 생각을 하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렇게 오래 잠을 잤는데도 졸리다.

그 생각과 함께 메디슨 포켓은 검사지를 집어던지고 드러누웠다. 지금 당장은 더 생각할 기운이 없다.

찝찝한 기분과 함께 메디슨 포켓이 눈을 감았다.

 

아, 한동안은 악몽을 꾸겠구나.

© 2026 hako | updated 2026.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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