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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로봇은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REVERSE: 1999 | 이니그마 × 루시

◈ ◈ ◈

 

 

_7장 기준으로 다소 두서가 없습니다.

 

 

 

고철로 이루어진 방에서는 이따금씩 윙윙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방의 중앙에 놓여 있는 금속 의자 위에는 잿빛의 여인이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다.

여인?

벌컥.

거칠게 열린 문 소리에 이어 성큼성큼 다가오는 발소리.

익숙한 발소리다.

 

"젠장, 이런 미친 짓은 그만두라고! 내가 말한 대비책은 세우고 진행하는 거야?!"

"아들러, 무슨 짓이야? 실험 중에 무턱대고 들어가는 건 라플라스식 예의에도 어긋난다고!"

"내 말 듣고 있어, 마담 루시?! 눈은 왜 감고 있는 거지? 울리히, 의식 각성자들이 잠을 잔다는 이야기는 없잖아! 이것 역시 주문의 부작용인가?"

 

작은 소란 속에서 그 로봇 은 "눈"을 천천히 뜬다. 형형히 빛나는 금빛 홍채가 금세 모습을 드러내며 제 옆에서 고성을 지르는 남성을 바라본다.

 

"···진정해, 아들러 연구원. 시야를 확보할 필요성이 없는 것 같아서 '인간의 일시적인 휴식'을 모방해 보았을 뿐이야. 하지만 이건 되려 네 걱정을 산 모양이군. 참고해야겠어."

"장난해?! 지금 그딴 게 중요하냐고. 아무리 고철 덩어리라고 한들 이런 무모한 짓거리를 강행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까 아들러, 그건 네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지? 이건 우리들만의 방식이고, 네게 결정할 권리 따위는 없어!"

"그렇게 인간을 위한다면서 정작 인간의 본성에서 가장 멀리 있는 행위만을 선택하는 너흴 보고 그냥 놔두라고? 차선책 따위 없이 뻔한 결과를 알고서도 강행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두 사람 다 그만. 울리히, 이번 실험도 제대로 기록되었나?"

"그렇습니다만···그보다 비협조를 넘어서 이렇게까지 방해가 된다면 쫓아내도 된다는 말씀, 여전히 유효합니까?"

"내가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이긴 하군. 하지만 아들러의 말이 완전히 틀리진 않아, 울리히. 이 연구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도' 폭풍우에 휩쓸리지 않을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니까."

 

또 다른 데이터 손실.

울리히와의 짧은 대화로 쉽게 유추해낼 수 있다. 이번 실험의 부작용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몸체가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기억 에는 없으나 기록 으로 그 편린을 알 수 있고, 그 기록자들이 있기에 강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아, 기억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아들러 연구원, 네 의견은 기록해 둘게. 데이터를 보존해 둘 방법도 병행해서 연구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만, 시간이 촉박하니까. 미래에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대비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다 한들, 지금의 너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지?

아들러는 그 말을 조용히 눌러 삼켰다. 이내 그는 혀를 차며 문 밖으로 거칠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금방 꼬리내리고 나가네요. 어쩌면 폭풍전야인가?"

"폭풍전야라기엔 폭풍우까지 10시간 밖에 남지 않았어, 울리히 연구원. 우리의 상황에 부합하지는 않는 단어 선택인 듯하네."

"······."

 

실험이 끝나면 마담 루시의 유머 모듈의 수정도 고려해야겠다. 울리히는 그런 생각을 고이 접어 실험 기록의 구석에 끼적여두었다.

 

 

 

 

여행 가방 속은 기이하다. 수많은 폭풍우와 사건들을 겪고도 여전히 견고하며, 이따금씩 황무지에 바람을 쐬러 나와 있는 마도학자들과 담소를 나눌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아들러 자신 옆에 서 있는 로봇이라던가.

 

"···마담 루시."

"오, 아들러. 타임키퍼의 여행 가방에는 어쩐 일이지?"

"기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거지?"

"엄밀히 말하자면 데이터 손실이 일어난 것이고, 손실이 계속해서 쌓이면 기록 자체가 밀리면서 복구할 수 없는 부분이 필연적으로 생기지. 나는 단지 그 손실량이 많았을 뿐이야."

 

아들러는 초연한 표정으로 담담히 말하는 기계를 바라보았다. 폭풍우 직후에, 책임자 권한대행의 자리에서 깨나 고생한 그의 얼굴은 이전보다도 더 버석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는 어느 정도의 후련함이 깃들어 있다.

 

"다만···틈틈이 남은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기억에는 없는 흥미로운 데이터의 단편들을 발견하긴 했지."

"기억?"

"음, 어쩌면 데이터의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지만. 폭풍우를 완전히 이겨낸 후의 인류의 모습이라던가. 어쩌면 내가 시뮬레이션 했던 잔존 데이터일지도 모르겠어."

"···그래.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런 거겠지, 루시."

 

루시는 그렇게 말하며 황무지의 지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연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휴식의 일부일까.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가며 실험하던 때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모습이다. 아들러는 그리 생각하며 작게 비싯댔다.

——로봇도 전기양의 꿈을 꾸는구나.

© 2026 hako | updated 2026.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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