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Dissection
REVERSE: 1999 OC × Medicine Pocket yume | 1st Aid Box
◈ ◈ ◈
라플라스의 실험실.
실험실 중간을 두꺼운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으며, 그 속에는 두 사람의 형체가 있다. 수술대 위에 앉아 있는 색채 상자가 클립보드를 노려보던 메디슨 포켓을 바라보며 생글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해부해봐도 좋아.”
“뭐?”
“제대로 들었잖아.”
“아직 혈액 분석이나 그 어떤 것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해부를 해? 어떤 약물에 거부반응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마취 부분을 말하는 거면 걱정할 건 없어. 그냥 이 상태 그대로 칼을 갖다대도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니까.”
담담한 표정과 대조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섬뜩한 말을 잘도 한다. 메디슨 포켓은 그런 생각을 하곤 혀를 찼다. 연구자로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은 그의 당연한 습관이고, 제 앞의 초자연자의 말을 온전히 믿기엔 방금 만난 사이 아닌가?
골몰하고 있는 메디슨 포켓의 생각을 끊은 건 제 손을 덥석 잡은 색채 상자의 손길이었다.
“뭐야?!”
“전부 내 탓으로 돌려도 좋아. 약속할게, 네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하나도 없어.”
정말로?
상대의 손과 맞닿은 부분에서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미지근함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색채 상자의 손은 그럼에도 너무나 인간의 것과 비슷해서.
메디슨 포켓은 이내 손을 치우고 뒤돌아 수술 도구들을 매만졌다. 무기질적이며 날카로운 수술 도구들이 금빛 눈동자를 마주한다.
“덥썩덥썩 잡지 마. 만약 책임질 수 없다면 어쩔 건데?”
“그럴 일은 절대 없지만···그럼 나는 이 세계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을 거야.”
“알 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짜증나니까.”
“말 그대로인데? 너무 어렵게 꼬아서 생각하지 마.”
“······.”
“···왜 망설이지? 네가 좋아할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닥쳐봐.”
앞서 했던 대화에서 생각 외로 말이 잘 통하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초자연자와 관련된 데이터는 타 종족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고, 개인차가 천차만별이다. 물론 해부한다면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니 이득이지만···어쩐지 말려드는 기분은 착각이 아닐 테다.
메디슨 포켓은 비효율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는 자신의 원칙만을 따르며, 개중에는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이라면 저지르지도 않는다는 조건도 있다.
이 제안은 비효율적인가? 아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인가? 모르겠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흥미를 자극하는 달콤한 제안이다.
가만히 있는다면야. 녀석의 회복 능력은 모르겠지만 봉합하는 건 자신 있다.
“···수술대에 누워.”
“오, 결정했나 봐?”
“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더 수월할 것 같거든?”
“으음~. 네가 설명을 요하면 성실하게 답해줄게.”
“그러든지. 감염 같은 것도 전혀 문제가 안 되나?”
“그래. 장담할게.”
“그래?”
그럼에도 수술 도구들은 원칙적으로 묵묵하게 메디슨 포켓의 손에 소독되었다.
옷가지 너머의 색채 상자의 육체는 익숙한 형체다.
남성이나 여성의 특징이 존재하지 않는 육체. 저와 닮아있다. 보다 작고 가는 신장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핏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건 초자연자니 그렇겠지.
애초에 채혈한 것도 투명한 액체이지 않았던가.
관찰한 것을 종이에 끄적였다. 초자연자의 두 눈이 그런 자신의 바쁜 손을
좇는다.
첫 기록을 끝낸 메디슨 포켓의 손에 메스가 들린다.
◇
없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새하얀 공간?
공허.
껍데기 안은 텅 비어있다.
분명 그렇다.
새하얀 공허 속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팔락인다.
종잇장?
손을 뻗어 잡으니 잡힌다.
메디슨 포켓은 순백의 종잇장을 색채 상자의 속에서 꺼냈다.

◇
“이건 뭐야?”
“페이지네.”
“알 수 있게 설명해.”
“말 그대로야. 나를 구성하는 페이지. 각각의 개체를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가 꺼낸 건 나의 정보의 일부지.”
“제기랄!”
메디슨 포켓의 손에서 바늘이 거친 소리를 내며 내동댕이 쳐진다.
“제발 되도않는 개소리 좀 하지 말랬지? 도대체 이 텅 빈 종잇장에 무슨 정보가 있다는 건데?!”
“그건 천천히 알아보면 되고. 안 꿰맬 거야? 상관 없긴 한데.”
“꺼져! 책임진다며?”
“알았어.”
메디슨 포켓이 표정을 구기며 자신의 머리를 헝클인다. 정보를 알아내려 한 건데 더더욱 미궁에 빠진 기분이다. 이게 무슨 시뮬레이션인 줄 아나. 자신을 천천히 알아가 보라고?
잔뜩 성난 채로 책상 위에 양손을 짚던 메디슨 포켓 뒤로 그림자가 진다. 뒤를 돌아보면 해부 사건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깔끔한 상태의 색채 상자가 있다.
“뭐야?”
“그래도 재밌었으니까 힌트를 줄게. 그건 네가 모르는 언어여서 안 보이는 걸 거야, 내가 있는 곳의 언어거든.”
“그래서 뭐라고 적혀 있는데.”
“바로 알려주는 건 재미없지. 그리고 그건 그렇게 읽는 게 아니거든? 네가 깨우쳐야 비로소 읽을 수 있어.”
한계였다. 몇 초 뒤 메디슨 포켓은 이미 색채 상자의 어깨죽지를 물고 늘어져 있었다. 예상 못한 공격에 색채 상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프진 않은데, 진짜 바로 물어뜯을 줄은 몰랐네.”
“아오!!! 아픈 시늉이라도 했으면 이 정도로 열받진 않았어!”
“아이고~, 메디슨 포켓이 사람···초자연자 잡는다~.”
“시끄러워! 더 짜증난다고!”
메디슨 포켓이 색채 상자 속에서 꺼낸 종잇장이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색채 상자가 그것을 잡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래도 기껏 얻은 연구 성과는 좀 더 소중히 대해봐. 아깝지 않아?”
“네가 신경을 긁어대지 않았으면 이미 그랬겠지!”
색채 상자 위에서 일어난 메디슨 포켓이 페이지를 뺏어 든다.
“재단에서 ok 사인이 떨어지면 협력하는 걸로 하지. 알아낸 게 거진 없으니까 옆에 두겠다는 거야. 착각하지 마!”
“그래, 그래. 알고 있으니까 진정 좀 해. 시간···은 많으니까.”
“나는 안 많아. 그러니까 서류 제출하고 오는 동안 여기에서 얌전히 기다려.”
“알았다니까.”
노트와 온갖 종이 뭉치들을 들고 메디슨 포켓이 실험실을 나섰다. 빌어먹을, 귀찮은 일이 늘어난 건 분명하다.
하지만 흥미롭다는 감정 역시 현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제 감정의 소용돌이를 구겨 삼키며 메디슨 포켓은 루시의 연구실로 발을 내딛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