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Inside
REVERSE: 1999 OC × Medicine Pocket yume | 1st Aid Box
◈ ◈ ◈
“야. 지금 할 일 없지?”
메디슨 포켓이 부스럭대며 연구실에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주사기와 앰플이 담긴 봉지가 한가득 들려 있다.
“뭔데?”
“이번에 만든 수면제 프로토타입. 잘 됐네, 네가 놔 봐.”
“내가 너한테?”
“그럼 내가 너한테 놓으리? 어차피 이런 약물은 너한테 제대로 통하지도 않잖아!”
짜증을 내면서도 메디슨 포켓은 가져온 봉투를 다소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놓곤 소파에 자신을 내던졌다.
“경구투약이 아니라?”
“귀찮아, 혈관에 바로 놔버리는 게 작용도 빠르다고.”
“그야 그렇겠지.”
“그리고 혈관 잡는 거 제대로 하나 확인도 하게.”
“잘못 찌르면 어쩌려고 그래?”
“그 정도론 안 죽어. 엿 먹이려는 의도로 잘못 찌르는 것만 아니면 뭐라 안 할게.”
“웬일이래.”
“이 새끼는 왜 뭘 맡기려 해도 토를 달지?”
색채 상자는 메디슨 포켓의 일갈을 무시하곤 테이블 위를 빤히 바라본다. 그의 손이 느릿하게 테이블에 놓인 봉투 하나를 개봉한다.
“빨리빨리 해! 소독도 똑바로 하고!”
“성격 더럽게 급하네. 팔뚝에 벌집 만들고 싶어?”
“만약 정말로 그러면 곱게 안 끝난다.”
성질내며 내밀어진 메디슨 포켓의 왼팔뚝에는 옅은 멍자국이 여럿 있었다. 습관처럼 매번 자해 실험을 해댄 탓이다. 색채 상자는 묵묵히 준비된 알콜솜으로 메디슨 포켓의 팔뚝을 소독했다.
뽁, 하는 소리와 함께 주삿바늘이 앰플 입구를 관통한다. 이내 주사기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가득 찬다.
“최대 투여량이야?”
“당연하지.”
“그래?”
색채 상자는 망설임 없이 주삿바늘을 메디슨 포켓의 팔에 꽂았다. 작게 움찔한 메디슨 포켓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제대로 꽂은 게 맞는 모양이다.
“연습했냐?”
“물론. 관찰도 하고.”
“부지런하게도 산다.”
“효과랑 부작용은?”
“효과는 꿈도 꾸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 부작용은 무기력증, 기절, 의식불명, 서맥, 심정지.”
“가지가지하네.”
“내가 아니면 누가 몸소 확인해 보겠냐?”
“그건 그래. 그래서 기록하라고?”
“어. 네가 관찰해서 보이는 것 전부.”
“전부?”
“그래.”
색채 상자가 작은 솜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갔던 부분을 눌렀다. 얼추 피가 멎은 것을 확인한 메디슨 포켓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곤 소파에 드러누우며 발로 색채 상자를 꾹꾹 밀었다.
“가서 기록할 노트나 가져와. 약효가 생각보다 빨리 도네.”
“알았어.”
색채 상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향했다. 이리저리 어질러진 책상 위 서류더미 속에서 노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텅 빈 탕약 캔디 봉투나 식빵 꼬투리 등을 정리하며 노트를 찾는 데 3분 정도 경과했던가.
“리리카, 자?”
노트를 들고 온 색채 상자가 메디슨 포켓에게 말을 걸었다.
메디슨 포켓이 소파에 누워 드물게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색채 상자는 자신의 고개를 가만히 메디슨 포켓의 얼굴에 가까이 대며 귀를 기울였다.
미약하게 나는 숨소리는 그래야만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호흡이 일정한 것을 보니 이 쪽은 문제가 딱히 없는 듯하다.
관찰한 것을 색채 상자가 테이블 위의 종이에 끄적인다. 실험 경과를 대신 관찰하며 기록하는 것 역시 조수의 역할이었다.
“···전부 관찰하랬지.”
메디슨 포켓의 위에 걸터앉은 색채 상자가 그의 상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걸 쓴다면 확실히 안쪽까지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색채 상자의 왼손이 하얗게 빛나며 무수히 많고 작은 종잇장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것은 아주 얇은 실로 변했고, 그 실들은 메디슨 포켓의 상체를 상처 하나 없이 관통해 안으로 침입했다.
살아 있는 내장이란 건 확실히 부드럽고 뜨겁구나.
생각보다 새빨갛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연약하다. 메디슨 포켓의 안에서 색채 상자의 손이 유유히 돌아다닌다. 이따금씩 형태와 빛깔이 궁금해 제 얼굴까지 집어넣어 보며 세세히 관찰했다. 말캉이며 박동치는 선홍빛의 내장들이 색채 상자의 눈에는 제법 귀여워 보였다. 미약한 생물의 육체 속에서 각종 유기체가 오밀조밀 모여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감각은 새로웠다.
과연, 이런 느낌이구나.
동시에 색채 상자의 오른손은 친구가 요구한대로 착실히 관찰 결과를 기록했다. 제 왼손이 메디슨 포켓의 심장에 닿기 전까지는.
메디슨 포켓의 심장은 확실히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약하게 뛰고 있었다. 아까 말했던 부작용 중 서맥인가? 색채 상자는 그런 생각과 함께 심장을 조심스레 손에 쥐고 느꼈다. 박동은 점점 느리고 약해졌고, 어느새 뚝, 하고 끊기는 것이 느껴졌다.
······.

심폐소생술은 어떻게 하는 거더라?
◇
“—헉!”
마치 악몽에서 깬 듯, 메디슨 포켓이 갑자기 일어났다.
“어, 일어났네. 좀처럼 심장이 안 뛰는 것 같길래 손댔는데.”
“···???”
메디슨 포켓이 눈가를 문지르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제 위에 있는 색채 상자, 그리고 제 상체를 아무런 흠 없이 뚫고 ‘내부’에 들어와 있는 색채 상자의 손.
“···뭐냐?”
“뭐냐니?”
“네 손! 지금 내 심장을 만지고 있잖아?!”
“아, 이거 말하는 거였어?”
색채 상자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제 손을 메디슨 포켓의 안에서 빼냈다. 방금 전까지만 메디슨 포켓의 내부에 있었던 색채 상자의 왼손과 메디슨 포켓의 상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깔끔했다. 식은땀을 흘리는 메디슨 포켓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그는 이내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웩.”
“봉투 갖다줘?”
“아니, 됐어! 살면서 제 심장이 만져지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껴볼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가?”
“그런가? 그런가?! 이 미친놈아, 다른 데도 만졌어?”
“당연하지.”
“뭐라고?!”
“오감을 전부 이용하는 게 좋은 연구자의 자세라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메디슨 포켓이 급하게 제 몸을 일으키더니 바닥에 구토한다. 별다른 식사를 아직 하지 않아 토사물은 대부분 위액으로 이루어져 투명하다시피 했다.
그런 메디슨 포켓을 보며 색채 상자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봉투 갖다 준댔잖아. 하여간 성질 더럽기는.”
“하···경과는 썼어? 내가 잠들거나 기절하면 기록하라고 했잖아.”
“눈 없니? 네 옆에 있잖아.”
색채 상자가 소파 옆 테이블의 노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쏘아붙였다. 메디슨 포켓은 색채 상자와 노트를 번갈아 가며 노려보더니 노트를 거칠게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
수면제 프로토타입 경과 일지
투여 후 3분 가량 경과.
피험자가 잠들었다. 호흡은 일정하다.
상세히 관찰해 보니 폐의 움직임 역시 일정하게 느껴진다.
5분 경과.
대장, 소장···별다른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간은 말랑하고 부드럽고 연약하다. 더 손대면 안 될 듯하다.
위장 움직임 역시 특이한 부분은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튼튼한 느낌이라 신기하다. 선홍빛의 내장들이 한 곳에 모여 한 생명을 작동하게 만든다는 점은 역시 신기하다. 이렇게 연약해 보이는 것들이 오랜 시간동안 삶을 지탱한다니, 인체의 신비란 놀라운 듯하다.
장난삼아 위장을 찔렀더니 놀란 듯이 꿀렁였다.
7분 경과.
정말로 심장은 왼쪽에 가깝게 위치되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박동이 느리고 약하게 느껴지는데, 조금 더 관찰해야 할 것 같다.
10분 경과.
서맥, 심정지 가능성 관찰.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폐소생을 하는 게 맞겠지? 그런데 심폐소생술은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11분 경과.
아, 심장이 다시 뛴다. 위장 쪽도 뭔가 울렁이는 것 같다.
심폐소생?을 행하니 깨어났
◇
“진짜 골고루도 만졌네!”
“잘했지?”
“아니! 다시는 허락도 없이 그러지 마!!”
“네가 전부 관찰하라며.”
“이런 의미였겠냐고!”
메디슨 포켓이 바닥을 대걸레로 벅벅 문지르며 성냈다. 제 토사물의 흔적은 다행히 금방 없어졌다.
상식이라는 게 없나? 도대체 누가 전부 관찰하라는 말에 실험체의 내장까지 만질 생각을 하겠는가!
하지만 별다른 대미지 없이 타 생물의 내부 구조를 훑을 수 있는 능력이 탐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젠장, 나한테 있는 능력이었으면 지금까지 더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에게 가능하면 이질감도 적을 것 같고.
그런 생각을 하는 메디슨 포켓을 아는지 모르는지, 색채 상자는 여유롭게 책상 위에 남은 탕약 캔디를 하나 까서 입에 넣었다. 그런 색채 상자를 보곤 힘이 빠진 메디슨 포켓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좀 도와주지?”
“다 닦았잖아, 도와줄 게 더 있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심폐소생술 매뉴얼이나 정독해.”
메디슨 포켓이 미간 사이를 문지르며 대걸레를 이끌고 나갔다. 물론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을 막 대하는 것은 짜증나지만, 환자 취급하며 전전긍긍하는 이들에 비하면 색채 상자의 반응이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피험자의 상태는 아주 멀쩡하다. 약물 제조 연구소에 투여량을 희석해달라 해서 그런 듯하다. 그러지 않았으면 정말로 위험했을 것 같다.
└ 그런 거였어?! 어쩐지 악몽 같은 감각이 든다 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