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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REVERSE: 1999 OC yume | 색채 상자 + 보이저 + 키페리나

◈ ◈ ◈

“···♪”

“처음 듣는 곡이네, 보이저. 새로 만든 곡이야?”

“······.”

 

제 친구의 질문에 작은 우주는 흥얼거림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디서 들은 거야?”

“응! 채이, 예쁜 곡.”

“채이 씨가 알려준 예쁜 곡이라는 거지? 정말 그렇네. 따뜻함이 느껴져.”

 

알리아의 말에 보이저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같이 오더니, 마주친 사이에 채이 씨가 좋은 곡을 하나 알려줬나 보구나. 클래식 취미를 공유할 친구도 생겨서 다행이다.

알리아는 그리 생각하며 작은 꽃이 담긴 꽃병에 물을 주었다.

이내 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리가 방에 울려퍼졌다.

 

 

며칠 전, 라플라스의 복도.

유유히 떠다니던 분홍빛 상자와 작은 우주가 마주쳤다. 둘 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던지라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 것은 덤이다.

 

“···아.”

“아, 보이저! 미안. 앞을 안 보고 있었어. 리리카가—그러니까, 메디슨 포켓이. 알고 있으려나? 그 하얗고 성질 더러운 녀석!”

“메디슨 포켓?”

 

보이저는 색채 상자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저의 반응을 확인한 색채 상자가 이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어진 말은 초자연자인 보이저나 색채 상자에게는 타격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용이었지만, 색채 상자는 어떻게든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글쎄, 그 녀석이 오늘도 내 보고서를 씹어먹고 있지 뭐야! 어제 밤 새서 작성했던 건데, 자기 입이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응.”

“그래서 짜증나서 도망 나왔어. 그래도 덕분에 예쁜이를 만났네?”

“예쁜이?”

“그래, 보이저. 방으로 돌아가는 거지? 같이 가자! 간만에 알리아에게도 인사하고 싶거든.”

“···응.”

 

가끔씩 튀어나오는 색채 상자의 능글맞은 태도를 천연덕스럽게 넘기는 건 라플라스 소속의 미덕이었다. 보이저는 그저 한결같이 반응한 것이지만. 보이저는 평범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색채 상자와 함께 걸어나갔다.

두 사람은 잠깐의 침묵 속에서 복도 산책을 이어갔다.

 

“참, 보이저. 혹시 이 곡 알아?”

 

그 침묵을 끊고 색채 상자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클래식 곡들을 즐기는 보이저였지만, 그것만큼은 처음 듣는 곡이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곡. 분명 스타일은 어쩌면 익숙하게도 느껴졌지만, 낭만적인 그 선율은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보이저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로 화답했다.

 

“그치? 아직은 나오지 않았으니까···뭐, 잘 됐다. 새로운 작품은 좋은 거니까, 안 그래?”

 

색채 상자가 씩 웃으며 보이저를 바라보았다. 보이저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채이가 흥얼거렸던 멜로디를 똑같이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마음에 들었나 보네, 다행이다.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라플라스에는 이런 예술을 공유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건 선물이야!”

 

색채 상자가 자신의 자켓을 뒤적이더니 작은 푸른빛 상자를 꺼냈다. 안에 작은 우주라도 담긴 듯, 조용히 반짝이는 작은 상자 옆에는 금빛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래, 오르골이다. 내부 구조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푸른빛 상자는 이내 보이저의 손에 담겨졌다.

 

“오르골—음악상자야. 방금 불렀던 곡을 담아놨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거라고?”

“음악···상자.”

“그래! 오르골이라고 하긴 했지만 나는 음악상자 쪽이 더 마음에 들더라고. 애초에 이건 오르골 소리도 아니고 진짜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리가 나거든. 신기하지?”

“응!”

 

푸른빛 음악상자를 받아든 보이저의 눈이 유난히 빛났다. 반가운 색의 물건을 만나게 되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보이저는 음악상자를 이리저리 보더니 손잡이를 돌렸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피아노.”

“그래, 피아노랑 바이올린의 이중주야. 근사하지? 네가 바이올린 부분을 연주한다면 내가 피아노를 쳐볼게. 그럼 정말로 이걸 온전히 연주할 수 있는 거야!”

“응, 아름다워.”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다. 그건 선물이야. 참, 손잡이는 한 번만 돌려도 잘 나와! 아, 벌써 다 왔네.”

 

색채 상자가 재잘거림을 끊고 눈 앞의 방문을 두들긴다.

대답이 들리고, 이내 금발의 소녀가 문을 열었다.

 

“어, 채이 씨···랑 보이저?”

“알리아!”

“안녕, 알리아! 복도에서 우연히 보이저랑 마주쳐서 인사도 할 겸 같이 왔어. 실례가 되진 않으려나?”

“아뇨, 전혀요. 들어오세요.”

 

갑작스러운 방문에 약간 얼떨떨했지만, 금방 안정을 되찾은 알리아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그러고 보니, 이 쪽은 채이 씨의 연구실과 떨어져 있지 않나요? 어쩌다가 마주치신 건가요?”

“글쎄 말이야, 메디 때문에 짜증나서 나왔어. 밤새 만든 보고서를 씹어먹는 꼴을 보고 싸울 뻔했다니까? 아, 고마워, 알리아.”

“저런.”

 

궁시렁대는 색채 상자에게 따뜻한 차가 쥐어진다. 세 사람은 차를 홀짝이며 담소를 나누었다. 웬 안내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는.

 

“···—.”

“···루시 씨?”

“메디슨 포켓 연구원이 근무지를 무단 이탈한 조수 색채 상자를 찾고 있습니다. 아, 메디슨 포켓—”

“야, 이 망할 조수놈아! 보고서 정도는 백업해놨으니까 빨리 와!”

“······.”

 

스피커 너머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루시에게 부탁(?)한 메디슨 포켓이 제 성을 못 이기고 들이닥친 듯하다. 이내 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송이 꺼졌다.

 

“···채이 씨, 휴식 시간이 아닌데 나오신 거예요?”

“미친놈···쪽팔리게. 미안, 알리아, 보이저. 나 갈게! 차 고마워!”

“조, 조심히 가세요!”

“안녕, 채이.”

 

문 밖으로 색채 상자가 금방 사라졌다.

 

“여전하시네, 두 분.”

"응.”

 

두 사람의 방에는 시나몬과 사과의 향이 감돌았다.

© 2026 hako | updated 2026.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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