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색채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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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 A Void
당신에게 있어서 공허는 어떤 이미지인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 텅 빈 공간? 무채색의 공간?
그것은 당신이 판단하기 나름이다.
공허의 주인은 자신의 세계를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채웠다. 쓰레기, 모조품, 찢겨나간 페이지, 바스라진 표지, 유골, 조각상.
그것들을 비로소 인지해야 당신은 '공허'를 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꾸며낸 공허는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다. 적어도 그런 모양새로 꾸며져 있다.
책꽂이에서 책을 한 권 골라볼까?
스스로의 껍데기를 찢고 나온 공허에게는 자아가 존재한다. 그는 스스로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전부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다. 공간에게는 의식이 존재한다.
그저,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
어떤 이야기 Some Story
그는 평범한 세계의 평범한 존재였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러했다.
껍데기는 덧없었고, 그는 그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꿔왔다.
그 계기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불안정한 스스로를 내던지면, 껍데기는 아주 손쉽게 파괴되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현상의 연속성만을 반영하는 세계는 그렇게 태어났다. 자신의 생살을 찢고 나온 부산물···아니, 온전한 자신.
그 세계의 신이자 공간 그 자체인 그는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에 닿은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첫 마디를 내뱉었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자 세계의 이름이기도 했다.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옮긴다면 이렇게 쓴다.
□□□□□.
물론, 읽고 있는 네가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이고 말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