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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SE:1999 드림 커미션 | 니엔 × 존 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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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커미션입니다.
◇
라플라스에는 유별난 인재들이 가득하다. 개중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도 많았고, 그들 중 하나는 라플라스의 수장이다. 물론 루시는 독특한 성격이기야 하지만, 그것은 의식 각성자 특유의 특징이 반영된 부분도 존재한다. 인간임에도 정말 이상한 이들을 꼽자면 날밤을 셀 수 있을 테다. 라플라스는 그 사실이 상식이자, 당연한 곳이다. 니엔과 존 티토 역시 그 ‘상식’에서 예외는 아니였다. 제각각 이상한 두 사람은 그렇게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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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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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엔이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제 앞에 있는 단발의 소녀가 내뱉은 말···그러니까, 숫자와 알파벳의 나열을 해석했다. 길을 막고 있으니까 비켜, 이런 젠장. 또 어떤 빡대가리가 길을 막고 있잖아.
아, 들어본 적 있다. 라플라스에서 근무한다면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 니엔의 앞에 있는 이 이상한 사람은 그 유명한 존 티토다. 16진법으로 독설을 쏘아붙이는 것으로 유명한 미래에서 온 천재, 라고 주장하는 그 사람. 그렇게 생각하며 니엔은 여전히 티토의 길을 막고 있었고, 한 술 더 얹어 그를 기웃대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뜩이나 더러운 티토의 성질을 돋구기에 충분했다. 5.1초만에 IBM 5100이 니엔의 머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니엔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고, 티토는 무어라 짜증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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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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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알 바도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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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가 바닥에 드러누운 니엔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 충격에 니엔은 그대로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첫 인상은 완전 꽝이다. 하지만 X와도 그랬기에, 니엔은 그 사실에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아프기만 하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니엔은 늘 그랬듯이 흥미를 가장 우선시했고, 자신에게 갑작스레 닥친 이 고통은 부차적인 결과물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건 당장 자신이 알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바닥에서 일어난 니엔이 고개를 갸웃댔다. 머리에는 생각보다 별 타격은 없지만, 얻어맞은 쪽의 목과 어깨 부분이 아픈 것을 보니 아주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티토가 자리를 피할 새도 없이 니엔은 도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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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그거 컨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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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라플라스 입사는 못했겠죠. 그리고 바이오 부서여서 하는 말인데, 원래 인간 뇌는 태어났을 때부터 죽어가기 시작해요. 좀 역설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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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말할수록 해석하는 데 시간 걸리니까 짧게 좀 말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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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짧은 숫자와 알파벳의 나열과 함께 이번에는 IBM 5100가 니엔의 상체에 날아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매가 약이다. 적어도 존 티토에게는 그 법칙이 각인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니엔은 그 법칙이 그다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점이 상황을 더더욱 불미스러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존 티토의 인내심은 길지 않았고, 니엔의 유일한 행운은 제 앞에 있는 것이 메디슨 포켓이 아닌 존 티토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존 티토는 메디슨 포켓처럼 남을 물어뜯지는 않았기에. IBM 5100의 묵직한 무게가 날아드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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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치곤 제법 정성들여서 저를 두 번이나 쳤네요. 안 무거워요? 그거, 뭐랬더라. 기종 이름이. 아무튼 되게 무겁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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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아, IBM 5100이었죠. 그거 20kg은 나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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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왜 라플라스에서 일해요? 제노가 더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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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요. 지금까지는 제법 성실하게 답해줬잖아요! 좀 더 답해준다고 어디 덧나요?”
니엔은 그렇게 능청스레 말하며 옷을 털고 다시 일어났다. 갈빗대는 딱히 나가지 않았고, 운이 나쁘면 멍이 드려나. 하지만 별 일 아니다. 니엔의 코 앞에 있는 흥미로운 상대가 현재 그의 관심사였으며, 뒤따라올 고통은 당장 니엔의 알 바는 아니었다. 니엔의 말대로 티토는 확실히 평소에 비해 대답을 잘 해주고 있는 편이었다. 그의 신랄함은 어디로 가지 않았지만, 16진법의 독설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속도로 해석하는 새로운 상대는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티토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이 더해졌고, IBM 5100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걷는 그의 곁에는 니엔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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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군인이라길래 해 본 소리예요. 전세계 군인이 전부 제노에 속하란 법은 없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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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 친한 척 하는 거예요. 알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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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관심 있거든요. X 씨랑도 왕래하지 않아요? 우린 나름 친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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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겠죠. 저도 그리 관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동료이자 친구일 뿐이라고요. 그래서 티토 씨에 대해서도 들어본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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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엄청난 자신감. 확실히 신입 때도 티토 씨 관련해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니엔이 종알대면, 티토는 나름 열과 성을 다해 답한다. 그 상태는 티토의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어쩌면 티토는 어느 순간부터 포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IBM 5100으로 두 번이나 맞고도 들러붙는 사람은 처음인 탓도 있겠다. 니엔이 그리 튼튼한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끈질긴 사람은 드물었다. 니엔 역시 그렇기 때문에 미묘하게 누그러진 티토의 태도에 흥미를 느끼고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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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요? 일단은 팀장님이 귀찮은 일을 시키기 전에 도망쳐 나온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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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겠죠. 하지만 그건 제 알 바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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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있다 가도 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이에게 IBM 5100의 세 번째 타격이 날아들었다. 제 연구실 밖에 나동그라진 니엔을 바라본 티토는 콧방귀를 뀌고 문을 쾅, 닫았다. 5초 가량 기절했던 니엔은 간신히 눈을 뜨고 바닥에서 상황을 파악했다. 코피 정도는 별 일 아니니까 상관 없다. 하지만 IBM 5100로 세 번이나 두들긴 직장 동료 정도는 존 티토 역시 분명 기억하겠지. 첫 인상이 별로인 게 대수인가? 어쨌든 흥미로운 상대를 발견했고, 그의 기억에 니엔 자신이 각인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수확은 있었다. 니엔은 그 생각과 함께 바닥에 계속해서 드러누웠다. IBM 5100의 후폭풍과 16진법 해독으로 인한 두통은 그가 잠시동안 눈을 감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나중에 그 IBM 5100으로 장난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 같다.
◇
그렇게 완전히 쓰러져 있는 니엔 곁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형체가 다가왔다.
“업보네요.”
“보고 있었어요? 좀 말리지.”
“글쎄요, 니엔이 다른 이에게 당하는 건 드문 일 아닌가요? 구경을 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X 씨 그렇게 봤는데 성격 나쁘네요.”
“별 말씀을요.”
X가 니엔 옆에 쭈그려 앉으며 바닥에 누워 있는 그를 관찰했다. IBM 5100로 제법 세게 맞았는데도 뇌진탕 같은 외상은 없는 모양이다. 쌤통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X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니엔은 그런 X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제일 먼저 든 생각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현재 상황에서 가장 동떨어진 질문이었다.
“첫 인상은 별로인 것 같죠?”
“질문인가요? 당연하죠. 제가 니엔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두들겨 패진 않았어요.”
“그건 X 씨 다리가 짧아서 그랬죠.”
“······.”
“좀 일으켜 줘요.”
“버리고 갈게요.”
“아! 진짜!”
“네, 진짜로요.”
X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빠져 있는 니엔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두들기고 일어났다. 그리고 정말로 니엔을 그대로 둔 채 홀연히 복도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