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promised
REVERSE: 1999 드림 커미션 | 플로렌스 해링턴 × 메디슨 포켓
◈ ◈ ◈
_커미션입니다.
◇
“메디슨 포켓 연구원.”
차가운 부검실의 공기에 또 다른 사람의 온도가 느껴지는 숨결이 잠시 더해졌다. 뒤돌아선 메디슨 포켓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제 앞에 놓인 이와 다르게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스토니 연구원의 부검이 끝났는지 확인차 방문했습니다.”
“눈 없어? 부검은 고사하고, 아직 메스도 안 들었어!”
“재촉하려는 의미는 없었습니다.”
“아, 그러시겠지. 플로렌스 해링턴은 그저 흔한 라플라스의 연구원 중 하나일 뿐이고, 그 위대하신 깡통께서는 라플라스의 자산이 어떤 경위로 망가진 건지 궁금하실 뿐이야. 안 그래?”
씩씩대는 메디슨 포켓이 진정하자 부검실 내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시몬은 구태여 메디슨 포켓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라플라스의 수장인 루시는 인간이 아닌 의식 각성자였고, 그에게 있어서 ‘인간적인’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기엔 메디슨 포켓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 깡통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인도주의, 인도주의를 부르짖는다고 한들 그건 일종의 흉내일 뿐이다. 플로렌스 해링턴이 어떤 경위로 사망했는지 듣고, 그것을 안타까워하는 알고리즘을 거칠 리가 없다. 그딴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메디슨 포켓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몬이 조용히 부검실을 나섰다. 가만히 있는 플로렌스의 손끝을 그가 마지막으로 맨손으로 건드렸다.
차갑다.
부검실 온도보다도, 차갑다.
◇
1달간의 출장에서 돌아온 플로렌스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잔뜩 쌓인 보고서를 전부 정리하고 연구실을 막 나선 차였다. 출장의 산물을 제출하기 위해 복도를 거닐던 그가 볼일이 있어 부서까지 찾아온 메디슨 포켓을 마주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로렌? 언제 돌아온 거야?”
“메디슨 포켓? 여긴 어쩐 일이야?”
“내가 먼저 질문했어.”
“몇 시간 안 됐어.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보고서를 제출하려던 참이었어.”
“그래? 벌써 한 달이나 지났어? 시간 참 빠르네.”
“···잘 지냈어?”
플로렌스의 질문은 당연히도 형식적이었다. 그야 메디슨 포켓은 정말 간만에 예산을 올려서 받았고, 그 덕에 얼굴이 전례 없이 반질반질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얼굴이 반질반질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플로렌스는 그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어떤 좋은 일이 생긴 것인지 물으려던 플로렌스보다 성질 급한 메디슨 포켓의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외근 너무 자주 나가는 거 아니야?”
“응?”
“네 부서가 외근이야 잦다고 들었지만, 유독 너만 항상 자리에 없단 말이지. 처음에는 안 그랬잖아?”
메디슨 포켓은 자신이 플로렌스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했다. 플로렌스의 자살시도 사건 이전만 해도 이 정도로 외근이 잦았다는 말은 못 들었던 것 같은데. 회복이 얼추 된 이후로는 업무 시간의 절반 가량은 라플라스의 밖에서 보냈다는 사실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플로렌스의 부서에 볼 일이 있는 것이 아닌, 플로렌스 해링턴이라는 개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갈 때마다 거의 9할은 ‘외근으로 인해서 부재중이다’라는 답변을 돌려받았기 때문에. 메디슨 포켓에게 친구가 한두명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개개인은 다 다른 인물이다. 단순히 심심풀이를 위해 플로렌스를 찾아간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가 플로렌스를 찾았다는 의미는 보통 그가 필요해서였다는 의미이다.
“없어서 보고 싶었어?”
“그렇게까지는 아니야. 일일이 신경 쓰기에는 나는 바쁜 몸이라고!”
“그렇겠지. 나는 그래도 네가 제법 보고 싶었어, 메디슨 포켓.”
“뭐?”
“외근 나갈 때마다 항상 친한 동료가 붙는 것도 아니지, 가끔은 광석 때문에 위험한 지형에도 들어가야 하지. 만에 하나 그런 데서 헛딛기라도 하면 네가 봐줄 수도 있잖아?”
“애초에 그딴 데에 위험하게 왜 들어가는데? 다치면 그나마 다행이지, 어디 하나 영영 망가지거나 죽으면.”
“너도 마찬가지잖아, 메디슨 포켓. 안 그래?”
“······.”
메디슨 포켓이 드물게도 입을 다물었다. 플로렌스의 말대로 메디슨 포켓 역시 제 몸을 딱히 사리지 않는 부류였고, 그 증거로 그의 팔뚝에는 갓 붙인 반창고 밑에서 신선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혹자는 과도한 자가 실험을 하는 메디슨 포켓에게 진절머리를 냈지만, 그의 행동이 의학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플로렌스 해링턴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현장 조사나 출장을 가는 것은 그것과 유사한 행위라는 뜻이다.
“나는 내가 뭘 하는지 알아. 내가 컨트롤 가능한 영역이라고.”
“···위험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메디슨.”
“해봤자 화학작용의 계산 실수 정도라고.”
“죽으면 무의미해.”
“네가 할 소리냐고!”
메디슨 포켓이 괜히 성을 내며 제 옆의 벽면을 발로 걷어찼다. 이건 메디슨 포켓 나름의 걱정이다. 플로렌스의 말대로 두 사람이 업무에 임하는 행위는 위험도의 우위를 가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메디슨 포켓은 어떻게든 핑계를 대려는 거라고. 그 흐름을 읽어낸 플로렌스가 등 뒤에서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그럼 다음 소식도 달가워하지 않을 텐데, 어떡할까. 물론 마주친 이상 말해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진작에 했지만, 직후에 메디슨 포켓이 이렇게까지 질색할 거라는 예상은 못 했기에 플로렌스는 머릿속을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 대신 너도 조심하는 거야, 메디슨.”
“퍽이나.”
“나 내일 또 출장 가. 이번에는 3개월 정도.”
“뭐?!”
“희귀한 마도학 광물이 나오는 장소가 발견됐거든. 이번 출장도 그거 때문에 기간이 길어졌던 거야. 확실하게 검증되었으니까 캐내는 일만 남았는데···.”
“그럼 네가 갈 이유는 없잖아?”
“물론 직접 캐는 거야 연구원이 할 일은 아니지만, 가서 계속해서 확인해줄 라플라스 인력은 필요해.”
“하.”
“내가 확인한 바로는 아마 마도학자 위주의 의약품에도 쓰일 수 있을 것 같아. 돌아올 때 네 몫의 샘플도 가지고 올게.”
“약속한 거다? 까먹으면 출장 3개월간 안 나가는 걸로.”
“그건 곤란해. 루시 씨도 허가 안 할 걸.”
“흥.”
메디슨 포켓이 입을 삐죽이며 팔짱을 꼈다. 딱히 기분이 그리 상한 건 아니었지만, 그 나름의 심술이라는 것을 간파한 플로렌스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메디슨 포켓이 옆눈으로 내밀어진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뭐야?”
“약속.”
“유치하게.”
“싫으면 안 해도 돼.”
“한다고, 약속! 다치거나 죽기나 해 봐, 그렇게 되면 의사는 나니까!”
“그건 안심되네. 죽어도 살려줄 거야?”
“되겠냐고! 죽지나 마. 그건 신도 못하는 일이야.”
“그래, 그래.”
◇
“···죽지 말랬잖아.”
차갑게 식은 플로렌스의 손끝에서 잿빛의 가루가 묻어나왔다. 그래, 일전에 그가 약속했던 마도학 광물은 무사히 받았다. 발신자는 전혀 무사하지 않았지만. 사인은 후두부 외상이었다. 와중에 멍청하게 광물을 꽉 쥐었던 나머지 현장에서 수습할 때 빼내느라 애를 먹었다나 뭐라나. 그게 그렇게나 중요했어, 로렌? 메디슨 포켓은 작게 코웃음을 치며 그 흔적을 털어냈다. 한 몸 바쳐서 얻어낸 게 고작 광물이냐고. 그러면 내가 좋아할 것 같았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잖아. 위험하면 다음을 기약해도 충분했던 걸 왜 그래야만 했어? 내가 기뻐할 줄 알았나? 그러지 않을 거란 정도는 알지 않아?
메디슨 포켓은 머릿속을 가다듬으며 플로렌스의 뒤통수를 만졌다. 딱딱하게 굳은 피딱지가 예의 광물 가루처럼 파스스 떨어져나왔다. 아무런 맥박도,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다. 메디슨 포켓은 피딱지를 긁어모아 시험관에 담았다. 네게서 나던 흙 내음을 연구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겠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메스가 망설임 없이 상처 부위를 갈랐다. 엉망진창으로 엉긴 핏덩이와 노을빛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갈라진 두개골이 드러났다. 시야를 가리는 두개골 파편을 빼내 트레이에 하나하나 내려놓자 모서리가 뭉개진 뇌가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뭐랬더라, ‘내가 죽으면 뇌를 표본으로 가져가도 돼’였던가.
“···네가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뭐 하러 표본을 두겠냐고.”
끔찍한 농담이 따로 없다. 아무리 메디슨 포켓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거나, 뇌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고 한들 절친했던 이의 뇌를 홀랑 표본으로 가져갈 정도로 윤리관이 박살 나 있지는 않았다. 아니, 네가 늙어서 뇌를 준다면 상관없었겠지. 이게 뭐냐고. 메디슨 포켓은 가만히 누워 있는 뇌를 검지로 콕콕 찌르며 실소했다. 그래, 완전히 잠들었구나. 그렇게 바쁘게 살며 잠든 모습을 좀처럼 본 적이 없는데 기어코 영영 잠든 거구나. ‘폭풍우’도 너를 다시는 되살리지 못하겠지.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비가역적이고,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재건의 손의 술수 따위를 쓰는 게 아닌 이상.
그리고 메디슨 포켓은 재건의 손 따위를 따를 생각도 없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건 신조차도 쉬이 손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망가진 두상을 관찰한 메디슨 포켓이 클립보드에 결과를 적어 내렸다. 보고되었던 대로 후두부의 외상으로 인한 뇌출혈. 척추에도 충격이 갔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육안으로 관찰되지는 않음. 목뼈가 부러진 것으로 보아 후두부의 충격과 중첩되어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그리 고통스럽게 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허망하게 죽다 못해 고통스럽게 죽었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세상은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늘 그랬던 것처럼. 라플라스도 동료의 죽음을 잠시간 애도할 뿐, 다시 미래를 향한 톱니바퀴가 될 것이다. 플로렌스 해링턴의 자리도 누군가로 대체될 것이다. 메디슨 포켓이 어린 나이에 바이오 부서장 자리를 꿰찼던 것처럼 말이다. 그 사실을 상기한 그가 씁쓸한 뒷맛을 애써 삼켜냈다.
이게 현실이다. ‘폭풍우’만이 아닌 죽음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그 축 처진 여뀌 아재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이딴 식으로 공감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레타 호프만의 죽음은 호프만 매듭을 만들어냈고, 그건 인류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플로렌스 해링턴이 목숨을 걸고 메디슨 포켓에게 전달한 편지는 가치 있는 일에 쓰일 것이다. 분명히 한 사람만이 아닌, 보다 많은 이들을 살릴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만큼은 살리지 못한다. 그것은 플로렌스 해링턴이라는 사람의 목숨의 무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