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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ying
REVERSE: 1999 드림 커미션 | 플로렌스 해링턴 × 메디슨 포켓

◈ ◈ ◈


 

_커미션입니다.

 

바람 잘 날 없는 라플라스 병동에 한 그림자가 다급하게 나타났다. 흙이 잔뜩 묻은 발자국이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명백하게 드러냈다.

복도 몇 개를 지나서 나타난 병실 중 하나에 그 형체가 문을 드르륵 열었다. 예고 없는 방문객의 등장에 병실에 있던 의사 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 의사 중 하나는 환자였다.

플로렌스가 메디슨 포켓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흙투성이의 발자국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의사, 그러니까 메스머 주니어는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직후에 일어난 일이 그의 신경을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메디슨 포켓!"

"플로렌스?"

"로렌?"

 

병실에 들이닥친 플로렌스에게 뭐라 할 새도 없이 그의 손이 메디슨 포켓의 뺨을 향했다.

 

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옆에 서 있던 메스머 주니어는 깜짝 놀랐고, 뺨을 맞은 메디슨 포켓은 고개가 약간 돌아간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신이 든 메스머 주니어가 두 사람을 말리려 했다.

 

"플로렌스!"

"뭐야?!"

"너 미친 거지? 메디슨 포켓. 실수였다고 말해, 제발!"

"당연히 실수지. 진정 좀 해, 로렌. 내가 죽으려고 그랬겠어?"

 

두 눈을 글썽이는 플로렌스가 재차 날리려던 손을 메디슨 포켓이 붙잡았다. 여차하면 정말로 뜯어말리려고 했던 메스머 주니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도학자 간의 싸움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지만, 자신 역시 의사니까.

메디슨 포켓이 플로렌스의 손목을 천천히 내리더니 메스머 주니어에게 눈짓했다. 나가라는 신호였다.

메스머 주니어가 눈을 굴리며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어찌됐든 이 자리에서 자신은 불청객이라고 느낀 모양이다.

 

"로렌."

"······."

"나 봐. 화났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긴장이 풀린 플로렌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메디슨 포켓이 손을 어정쩡하게 들어 그런 그의 눈가를 훔쳤다. 흙투성이인 모습을 보아하니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에 병동으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메디슨 포켓이 그 사실을 깨닫자 피식 웃었다. 그 소리를 듣고 플로렌스가 메디슨 포켓을 쏘아보았다.

 

"지금 웃어?"

"나는 사람을 위로하는 재주가 없다는 거 알잖아."

"웃음이 나오냐고."

"평소에 화 안 내던 사람이 화내는 게 더 무섭다더니 그게 진짜긴 한가 보네."

"메디슨 포켓!"

"출장은 잘 다녀왔어? 나 때문에 오자마자 병동으로 온 것 같은데."

"···맞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내가 몰랐으면 너는 말도 안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퇴원했겠지."

"괜히 걱정을 사서 뭐해? 이미 일어난 일이고, 해결됐는데."

"너 진짜 너무한 거 알아?"

"내 나름대로의 배려인데, 이것도 틀린 거야?"

"그건."

 

메디슨 포켓 나름의 배려인 것은 사실이다. 플로렌스의 머리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메디슨 포켓이 매정하다던가, 조금 더 조심했으면 좋겠다던가, 그런 생각이 겉잡을 수 없게 뻗쳐나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플로렌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오른손을 들었다.

 

짝.

 

"이번엔 또 왜?!"

"미안, 메디슨. 그런데 정말로 생각할수록 화를 참을 수가 없었어. 그만 때릴게."

"나 환자야, 로렌. 알고 있는 거지? 너 지금 병실에서 환자 학대하고 있다니까?"

"한 대만 더 때려도 될까?"

"그건 좀 참아주라. 나 지금도 골이 울리거든."

 

플로렌스가 손을 천천히 내렸다. 수면제 과다복용이라고 했던가? 그런 걸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지 않냐고. 네 몸은 네가 제일 잘 안다면서. 이런 실수는 정말 드물게 한다지만 만약 내가 멀리 출장을 갔고, 갔다 왔더니 네가 더 이상 없다는 상상을 하면 참을 수가 없어져서.

 

하지만 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플로렌스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메디슨 포켓이 그 정도로 소중한 친구여서? 그렇다면 당연한 감정이 맞다. 하지만 메디슨 포켓의 생각은 어떻지? 만약 내가 멀리 출장을 가버렸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메디슨 포켓은 나처럼 동요할까.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거지.

그 생각의 흐름을 끊은 것은 곁에서 가만히 있던 메디슨 포켓이었다.

 

"무슨 생각해, 로렌?"

"······."

"한 대 더 칠래? 이제 좀 덜 어지럽거든."

"장난해, 메디슨?"

"아니."

"됐어. 더 때린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진 않아."

"그럼 들어가. 돌아오자마자 괜히 병동까지 발걸음하게 해서 미안."

"나는 그거 때문에 화난 게 아니야, 메디슨 포켓."

"그래. 그래도 일단 들어가서 쉬어. 네 안색도 말이 아니다."

"덕분에."

 

플로렌스가 천천히 일어나서 병실을 나섰다. 그래, 메디슨 포켓이 환자이지, 내가 환자도 아닌데. 괜히 아픈 사람에게 더 화낼 바에는 자리를 떠나는 게 맞겠지. 하지만 본인 탓이잖아? 매번 스스로에게 과도한 실험을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마음 졸이는 건 하나도 생각 안 하는 거냐고. 그렇게 원망하는 플로렌스의 뒤에서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메디슨 포켓이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퇴원하면 연락할게."

 

아무런 답도 없이 탁 닫힌 병실은 도로 적막에 휩싸였다.

메디슨 포켓이 침대에 앉은 채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정말로 화난 모양인데, 어떻게 풀어줘야 하지. 애초에 저렇게까지 화날 거라고 예상도 못했기에 이 상황은 메디슨 포켓에게 있어서 하나의 변수였다. 플로렌스는 늘 외근과 출장이 잦았고, 그 사이에 메디슨 포켓이 약물 과다복용을 해서 병동에 실려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는 플로렌스가 돌아온 타이밍과 딱 맞아 떨어졌다는 불운이 존재할 뿐이었다. 메디슨 포켓은 그렇게 사고하며 눈을 굴렸다. 그래,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과다복용으로 실려오게 된 것도 운이 안 좋았을 뿐이었다. 최대 복용량을 아무리 정교하게 계산한들, 메디슨 포켓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인간은 실수하기 마련이다. 플로렌스 해링턴 역시 인간이고, 그런 그도 마찬가지로 실수하는 순간이 있을 테다.

 

그런데 로렌은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거지?

정말로 이해를 못한 메디슨 포켓은 몇 분을 들여 더 고민했지만 마땅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그는 그대로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어차피 자신이 이렇게 골몰해봤자 정답은 플로렌스에게 있다. 내가 언제부터 사람의 마음을 잘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이러는 건지. 메디슨 포켓이 그 생각을 하며 콧방귀를 뀌며 눈을 감았다.


 


 

메디슨 포켓이 다시 눈을 뜬 것은 같은 날, 늦은 저녁이었다. 병동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곁의 탁자에는 이번 약물의 투자자가 보낸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메디슨 포켓은 개중 가장 실해보이는 사과를 하나 집어들어 옷에 대충 문지르고 한 입 베어물었다. 아삭이며 적당하게 단 맛이 나는 사과는 남은 잠기운을 쫓아내기에 충분했다.

뇌를 찌르는 감각은 더 이상 없는 것을 보아하니 해독은 얼추 끝난 모양이었다. 메디슨 포켓이 비척대며 병실을 나섰다. 익숙하게 드나드는 이 곳에서 퇴원 수속을 밟는 것은 눈썹 하나 까딱이면 끝날 일이었다.

 

과일 바구니를 들고 라플라스 기숙사를 거닐던 메디슨 포켓이 한 문 앞에 멈춰 섰다. 메디슨 포켓 본인의 방은 아니지만, 이제는 익숙한 방문이다. 그가 문을 두드렸다.

 

"로렌, 있어?"

 

묵묵부답. 메디슨 포켓이 주머니에서 철사를 꺼내들어 열쇠구멍을 휘적였다. 3분 정도 지나서야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라플라스 연구원에게 있어서 기본 소양은 아니지만, 어깨 너머로 별별 것을 배운 메디슨 포켓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아무렴 어때? 로렌이 화내면 사과해야지. 이미 이것보다 더 큰 일을 저지른 상태여서 상관이 있나 싶고, 방에 드나드는 것도 처음이 아닌데. 그냥 문을 안 잠근 게 아니냐며 시침을 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생각이 무색하게 메디슨 포켓이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은 알몸의 플로렌스였다.

 

"?"

"메디슨?!"

"이제야 씻은 거야? 여태 뭘 하다가?"

"그야, 출장 관련 서류랑 보고서 정리를 하다가···아니, 메디슨. 너야말로 어떻게 들어온 거야? 분명 문을 잠갔을 텐데."

"따고 들어왔어."

"뭐?!"

"미안, 그런데 너도 쓰러졌나 싶어서."

"아무리 그래봤자 피곤해서겠지, 너처럼 약물 과다복용해서가 아니라."

 

플로렌스가 삐죽이며 수건으로 몸을 가렸다. 메디슨 포켓이 머리를 긁적이며 과일 바구니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불청객인 주제에 도로 나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왜 왔어?"

"왜 왔냐니, 아까 내가 퇴원하면 연락한댔잖아?"

"왜?"

"로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지금 건은 내가 잘못한 게 맞아. 그런데 내가 과다복용을 했다고 해서 네가 그렇게까지 화난 건 아직도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어서 물어보러 온 거야."

"······."

 

플로렌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메디슨 포켓은 가끔 멍청할 정도로 둔감하다는 현실이 그를 막막하게 만들었다.

내가 화난 이유는 메디슨 포켓, 네가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아서야. 아니, 스스로가 중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 명백하지. 너는 일찍 죽을 생각이 없잖아? 하지만 왜 간혹 매 순간마다 죽어도 상관 없을 것처럼 구냐고. 그렇게나 죽지 않을 자신이 있어? 네가 아무리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도, 폭풍우 같은 재앙은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데. 적어도 네가, 네 손으로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해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해, 로렌.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거라는 거 알잖아."

"너 정말 너무한 거 알아, 메디슨 포켓?"

"그러니까 내가 뭐를. 내가 무단침입한 건에 대해서 화를 낸다면 확실히 납득하겠어. 네가 안전을 느껴야 할 장소에 내가 멋대로 침범한 게 맞으니까. 하지만 내가 과다복용을 했다는 점에서 네가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봐, 지금은 내 뺨을 때릴 정도로 화나지 않았잖아? 나는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나는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메디슨 포켓."

"뭐? 갑자기?"

"그래서 화가 났던 것 같아."

"이해가 안 돼."

"폭풍우 같은 재난을 피하려 해도 죽는 사람이 수두룩해. 그런데도 너는 죽거나 영영 잘못될 수 있는 일에도 마구잡이로 달려들잖아."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하는 거야, 로렌. 네 눈에는 그래 보이지 않더라도."

"그래서 과다복용으로 실려갔던 거야?"

"나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예전에도 이랬던 적 있지?"

"글쎄."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문제인 거야, 메디슨. 나는 다시는."

"다시는 뭐."

"다시는 내 주변 사람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플로렌스가 겨우 뱉어낸 그 말에 방에 정적이 맴돌았다. 그 말에 조금 멍한 메디슨 포켓을 뒤로하고 플로렌스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메디슨 포켓이 드물게 고민에 빠졌다. 그런 이유였다고? 나도 네 '가족'들이나 그 주변인에 준하는 사람들에 포함된다고? 메디슨 포켓에게 있어서 그 말은 알쏭달쏭했다. 자신과 다르게 플로렌스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메디슨 포켓이 플로렌스에게 있어서 그에 준하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상상에 미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애초에 메디슨 포켓은 가족이라는 감각이 뭔지 제대로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네가 말을 안 했잖아."

"네가 바보인 거야, 메디슨."

"그래, 그래. 그 점은 인정할게. 너도 모르는 건 아니잖아?"

"말해줘야 안다는 점이 진짜 짜증나."

"짜증도 낼 줄 알고, 다 컸네."

"메디슨 포켓!"

 

플로렌스가 버럭 짜증을 냈다. 메디슨 포켓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쿡쿡 웃어댔다. 플로렌스가 다시 손을 들자 메디슨 포켓이 피하는 시늉을 했다.

 

"또 때릴 거면 다른 쪽으로 때려, 로렌."

"안 때려."

"그건 고맙네. 파인애플 먹을래?"

"파인애플?"

"투자자가 주고 갔어. 손질해야 하긴 하는데."

"파인애플 손질할 줄 알아?"

"아니?"

"?"

 

두 사람은 탁자 위의 파인애플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메디슨 포켓에게 있는 것은 예비용 메스 하나 뿐이었고, 플로렌스의 방에도 마땅한 칼이 없었다.

 

"안 되겠네. 사과 먹을래?"

"그래."

"사과의 의미에서 사과야."

"재미없어, 메디슨."

"미안."

 

방 안에는 아삭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구니에 덩그러니 남은 파인애플은 다음날 메디슨 포켓이 집도하는 수술실에서 해체되었다.

© 2026 hako | updated 2026.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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