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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sons
REVERSE: 1999 드림 커미션 | 니엔
× X

◈ ◈ ◈


 

_커미션입니다.

 

 

 

"X 씨, 아이스크림 땡기지 않아요?"
"전혀요."
"진짜로 묻는 거 아닌 거 알죠?"
"네. 니엔이 사요."

라플라스 기숙사에 줄지어 있는 방들 중 하나에서 익숙한 두 사람이 실없는 담소를 나누었다. X의 티셔츠를 뺏어 입은—그러니까 주인의 허락을 받기도 전에 입은—니엔이 X의 배 위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었다. 평범한 사이즈의 침대에 두 사람이 끼기엔 조금 좁은 것은 확실했다. X가 니엔의 머리를 피해 자신의 배를 벅벅 긁었다. 니엔의 길고 까만 머리카락이 그를 간지럽힌 모양이었다. 니엔이 툴툴대며 입을 열었다.

"근처에 괜찮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다른 직원에게서 들은 데가 있긴 해요. 그런데···"
"그런데?"
"지금 밖에 눈 오고 있는 거, 알고 있죠?"
"무슨 상관이에요?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오, 니엔이 그런 말도 알아요? 윽."

X의 놀리는 말에 니엔이 자신의 머리를 들었다가 박치기하듯이 도로 내리쳤다. 그 반동에 X의 비꼬려던 말은 도로 쏙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니엔 역시 근방에 크리터가 배달을 해주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근처에 크리터가 배달해주는 가게가 있다고 했던 것 같아요."
"크리터들이 배달하면서 절반 정도를 먹기로 유명하죠. 저는 반대예요."
"아, 그런 거면 저도 반대죠."
"도로 원점이네요."
"아까 말한 거기는요?"
"나가야죠."
"귀찮은데."
"그럼 먹지 마요."

주말의 라플라스 기숙사는 비교적 평온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늦은 오전부터 X의 방에서 시간을 떼웠다. 바깥은 쥐 죽은 듯 고요하게 눈이 세상을 새하얗게 덮어가고 있었다. 컵을 창 밖에 둬서 눈이 담기게 하면 아이스크림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한 니엔이 X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X가 니엔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다가 컵 놔두는 게 편할 것 같은데요."
"눈을 퍼먹겠다고요?"
"빙수같은 거죠."
"제 방에는 설탕밖에 없어요."
"탕비실에는 시럽 있잖아요."
"그럴 시간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는 게 낫지 않아요?"
"하지만 눈이 더 쌓이면 나가기 귀찮잖아요."
"그건 일리가 있네요."
"아니면 X 씨 연구실에 뭐 없어요? 무슨 뚝딱 빙수토핑 메이커 같은 거."
"고려해 볼게요. 지금은 없네요."
"아쉽게 됐네요."

게으른 두 사람의 결정이 났다. 니엔이 비척대며 일어나서 테이블에 놓인 빈 머그잔 두 개를 들었다. 두 잔 다 일찍이 다 마신 커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니엔이 싱크대에서 컵을 대충 헹구고 창가에 다가갔다.
눈폭풍은 아니였지만, 눈이 제법 쌓인 바깥에 나가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임이 분명했다. 창틀 바깥에 머그잔 두 개가 놓였고, 창문이 다시 닫혔다. 창문을 닫은 니엔이 창가의 벽에 등을 기댔다. 방해꾼이 사라진 X는 침대에 바로 앉았다. 니엔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방문으로 다가갔다. X가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라플라스 기숙사 복도를 거닐었다. 눈이 쌓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 그 동안 탕비실이나 X의 연구실에서 '토핑'으로 쓸 것을 가져올 심산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의 티셔츠 잠옷 차림은 오히려 번쩍거리는 라플라스 실험복들 사이에서 튀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금세 라플라스 연구소의 건물에 도착했다.
주말의 라플라스 연구소는 여전히 활력을 띈다. 무기질한 색이 가득하지만, 열정적인 연구원들은 밤낮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늘 분주하게 건물 안에서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 녹아든 두 사람이 탕비실에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탕비실에는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X 씨, 연구실에 뭐뭐 있다고요?"
"우유, 크림, 음···헤이즐넛 시럽, 바닐라 시럽, 카라멜 정도인 것 같은데요."
"그럼 커피 빙수로 하죠?"
"그게 낫겠네요. 오, 비스킷이 하나 남았네요."

딱 하나 남았던 간식도 그렇게 흔적을 감췄다. 탕비실 안에는 두 사람만이 있었기에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니엔이 탕비실을 먼저 나섰다. 둘의 다음 경유지는 X의 연구실이었다.
X의 말대로 그의 연구실에는 가장 기본적인 커피와 그에 곁들일 것들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현재로썬 감지덕지였기에 두 사람은 되는대로 전부 챙겨 나왔다. 연구실을 나선 X가 니엔에게 물었다.

"메디슨 포켓의 연구실에는 뭔가 없나요?"
"팀장님 연구실에요? 오늘 계실지 모르겠네. 쉬는 날에 막 들어갔다고 역정내실지도 모른다고요."
"뭐 어때요? 니엔이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썼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그럼 가볼까요?"

니엔이 다시 앞장섰다. 메디슨 포켓의 연구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자리를 비운 것인지, 실험에 열중하는 중인지, 아니면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인지는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덜컹 열린 연구실의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전등이 전부 꺼진 것을 보아 최소한 자리를 비운 것은 확실했다. 두 사람은 메디슨 포켓의 연구실을 샅샅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먹다 남은 샌드위치가 있네요."
"빙수에 올리려고요? X 씨에게 그런 취향이 있을 줄은."
"그럴 리가요. 며칠 지난 것 같은데요?"
"곰팡이 폈어요?"
"곧 필 것 같아요."
"배양하시려나 보네. 다른 거나 봐요."

니엔이 요란하게 책상에 달린 서랍들을 열고 닫았다. 쾅쾅대는 소리는 전부 '꽝'을 뜻하기도 했다. 그런 니엔을 뒤로하고 X는 다른 것들에 더 열중하는 듯했다. 활성 세포와 관련된 논문들, 탕약 캔디 부스러기, '폭풍우' 연구와 같은 것들 말이다. 연구실의 모든 서랍들을 확인한 니엔이 그런 X의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이네요."
"메디슨 포켓의 머리카락이라면 여기 있긴 해요."
"어, 그렇네."
"탕약 캔디는 어때요?"
"별로, 레몬 사탕 같은 거면 생각해 봤을지도요."
"커피맛 빙수인데도요?"
"그냥 맛있잖아요."

일리가 있다는 듯 X가 끄덕이며 수긍했다. X의 책상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잡동사니에 산에서 눈에 띈 비글의 머리털은 바닥에 그대로 던져졌다. 머리를 긁으며 곰곰히 생각에 잠긴 니엔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건포도를 한 상자 가지고 오셨거든요."
"메디슨 포켓이요?"
"네. 저는 팀장님이야말로 진짜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해요. 맨 건포도를 돈 주고 사 먹는 건 미친 짓이라고요."

니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말을 그대로 메디슨 포켓 앞에서 한 이후에 1주일간 연구실 청소 담당이 된 것을 또 다른 이야기였다. 제법 큰 상자였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니 팀장님이 그새 다 드셨나? 그렇다기에는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분명 연구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데, 도대체 어디에 둔 걸까? 니엔이 갸웃대며 생각에 빠졌다. X는 니엔의 말을 듣고 서류더미를 조금 더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커피에 건포도가 어울릴까요?"
"식감이라도 살릴 수 있겠죠."
"팀장님이랑 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정확히 그 이유로 잔뜩 사 오신 거였거든요."
"메디슨 포켓답네요. 아, 이건가요?"

X가 서류들은 주제별로 간단하게 쌓아서 정리하다 발견한 종이봉투 하나를 들어올렸다. 봉투는 미백색의 유산지 재질로 되어있었다. 니엔이 가만히 보더니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역시, 정리를 안 하신 거였구나."
"청소 담당은 니엔이었잖아요?"
"팀장님 성격 알잖아요, 치우라고 해놓고 잘못 건들면 역정 내시는 거."
"일리가 있네요."
"하나 정도는 모르시겠죠?"
"글쎄요, 딱 하나 남은 걸 감춰둔 걸 수도 있죠."
"먼저 찾은 사람이 임자죠. 증거만 없으면 모르는 일."
"같은 생각이에요."

두 사람은 무의미하지 않았던 수색에서 얻은 전리품을 들고 연구실에서 유유자적 나왔다. 이제 더 채집할 곳이 있을까? 두 사람은 정확히 같은 고민에 빠져서 복도 중간에서 멈칫했다. 나름 농담으로 시작되었던 '빙수'에 사뭇 진지해진 현장을 방해한 것은 청록색의 멜루진이었다. 때마침 적격인 사람이었다.

"안녕! 둘 다 여기서 뭐 해? 오늘 출근 안 하는 날이지 않아?"
"아, 히사베스. 혹시 연구실에 간식거리가 있나요?"
"간식거리? 쿠키, 감자칩, 비스킷, 컵라면, 팝콘, 초콜릿, 빵···"
"2호, 그렇게 다 말해서는 끝도 없어!"
"그래,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하는 게 제일 빠르겠다고."

"음, 아이스크림 같은 거랑 어울리는 거요."
"그럼 초콜릿이랑 쿠키가 괜찮지 않을까?"
"혹시 감자칩도 얻어도 될까요?"
"물론이지. 따라와."

난데없는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 히사베스가 앞장섰다. 시답잖은 담소를 나누다 보니 히사베스의 연구실에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히사베스, 탕비실에서 간식을 훔쳐 온 건 아니죠?"
"뭐? 그럴 리가. 나는 먹는 거에 그렇게 돈을 아끼진 않아. 알잖아?"
"하하, 그렇죠. 탕비실이 텅 비어있길래 물어봤어요."
"하긴, 주말이니까. 라플라스에 굶주린 연구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심지어 오늘 메뉴도 최악이라고. 아무 맛도 안 나는 콩 스프래!"
"인권유린이네요."
"동의하는 바야. 인권만이 아니라 사권, 견권유린이기도 하지."

히사베스가 투덜대며 예의 초콜릿, 쿠키, 그리고 감자칩을 잔뜩 집어들었다. 니엔과 X 둘 다에게 양팔 가득 간식이 안겨졌다. 어정쩡하게 간식더미를 든 두 사람을 히사베스가 배웅했다.

"이렇게 많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가져가! 온 김에 주는 게 낫지, 어차피 주말 내내 눈 때문에 나가기도 귀찮을 걸."
"맞아요, X 씨. 저는 사양하지 않을게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예상보다 성공적인 수확에 두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기숙사를 향했다. 중간에 X가 간식을 와르르 쏟으며 넘어져서 멈추기 전까지는.

"아이쿠."
"뭐예요?"
"발을 헛디뎠어요."
"가지가지 하시네요."

니엔이 X가 떨어트린 감자칩 한 봉지를 냉큼 뜯어서 자신의 입에 넣었다. 상큼한 라임향과 짭짤한 맛이 입에 감돌며 바삭였다. X가 떨어트린 간식들을 주워모으다 니엔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해요, 니엔?"
"감자칩 음미요."
"니엔, 자신이 진짜 이상한 사람인 거 알죠?"
"거울 보고 계세요?"

X가 간식을 전부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엔이 감자칩 하나를 전부 다 먹은 덕에 짐이 줄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지. 근처의 쓰레기통 속으로 텅 빈 감자칩 봉투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방으로 돌아온 둘은 테이블에 전리품을 와르륵 쏟아두었다. 어떤 불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로.

"어? 컵이 사라졌는데요?"

니엔의 얼빠진 목소리를 듣고 간식들을 정리하던 X가 니엔의 곁으로 갔다.
정말이었다.
머그잔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창틀에서 넘어가 떨어진 흔적조차도 없었다. 한참 전에 떨어져서 눈에 파묻히기라도 한 건가?

"니엔, 확인해 봐요."
"저보고 나가라고요? X 씨가 나가서 확인해 봐요, 컵 주인이잖아요."
"음, 맞는 말이에요."

X가 납득하고 자신의 뺨을 긁더니 의자를 끌고 창가에 댔다. 그가 의자를 밟고 올라서 창문 밖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도로 내려왔다.

"없네요, 완벽하게 사라졌어요. 가져간 사람에게 배우고 싶을 정도로 아무 흔적도 없네요."
"라플라스 기숙사에 괴도가 들었나 보죠, 아쉽게 됐네요."
"그래도 가지고 온 것들만으로도 간식은 되니까 괜찮지 않나요?"
"오, X 씨 천재예요?"
"네."

니엔이 들고 있던 감자칩 하나를 X에게 던졌다. 재수없는 소리는 집어치우라는 의미였다. 와중에 그걸 잡은 X가 감자칩을 입에 넣었다. 이번에는 바베큐맛인 모양이다.

"확실히 빙수에 어울리는 맛은 아니네요."
"어차피 빙수는 물 건너갔잖아요? 아까 그 라임맛 감자칩이 괜찮았는데."
"저는 먹어보지도 못했어요."
"그냥 그렇다고요."

와삭대는 소리와 함께 바베큐맛 감자칩도 둘의 위장 속으로 사라졌다. 그대로 의자에 앉은 X가 연구실에서 가져온 커피 향을 음미했다.

"니엔, 심심하지 않아요?"
"X 씨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혹시 크리터랑 몸이 뒤바뀐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영화나 보자고 할까 싶어서요."
"데이트 신청이에요?"
"겠어요?"
"무슨 영화 볼 건데요?"
"지금부터 정해야죠. 라플라스 자료실에는 별 게 다 있으니까요."

© 2026 hako | updated 2026.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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