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Explosion!
REVERSE: 1999 드림 커미션 | 플로렌스 해링턴 × 메디슨 포켓

◈ ◈ ◈


 

_커미션입니다.

 


 

“요즘은 어때, 플로렌스?”

“어떻냐니?”

“질문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게. 전에 상담했을 때보다 나아진 것 같냐는 말이야. 우울감이나, 자살 충동이라던가.”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때’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것 같아.”

“주변 환경의 변화가 있었어?”

“변화랄까···.”

 

건조하지만 아주 무신경하지는 않은 소녀의 말에 플로렌스는 고민에 잠겼다. 자살 시도로 생겼던 골절상이나 타박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지 1주일가량 지났던가. 플로렌스는 원래 하던 업무에 차질 없이 복귀했다. 가끔 동료들이 조금은 쉬어야 하지 않냐, 또는 더 쉬어도 괜찮지 않냐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건 플로렌스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은 나름대로 좋은 방식이었고, 플로렌스는 그 방법에 가장 익숙했기 때문이다.


 


 

“로렌! 호박 샘플이 필요해!”

“메디슨 포켓?”

“얼타지 말고! 마도학 소염진통제 개발에 쓰려는데, 다 써버려서 연락을 몇 번이나 넣었는데도 너희 부서는 왜 연락을 안 받는 거야?!”

“어?”

“오늘 연락 담당 도대체 누구야?”

 

메디슨 포켓이 씩씩대더니 플로렌스의 부서장—그러니까 지질광석학 부서장—의 연구실 소파에 아무렇게 드러눕듯이 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플로렌스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 뭉치를 들고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부서장은 지금 자리를 비웠고, 플로렌스는 보고서 제출을 위해 잠시 들렀을 뿐이었다. 오늘의 연락 담당은···.

 

“아.”

“뭐?”

 

플로렌스는 아침 일찍이 신경질을 내던 제 동료를 떠올렸다. 분명 그는 ‘메디슨 포켓이 제멋대로 당일 필요하다며 안 그래도 없는 호박 샘플 발주를 새벽 6시에 넣었다’라며 화내며 요청을 적다가 볼펜으로 박박 줄을 그어 지웠다. 그 흔적이 통신기 옆의 메모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플로렌스는 그것을 은근슬쩍 뜯어서 증거 인멸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지금 우리 부서에도 호박 샘플이 부족할 텐데.”

“그럼 진작에 말했어야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호박 샘플 발주는 네가 넣었어.”

“내 탓이라는 거야?!”

“보통 당일 발주는 우리도 힘들어, 메디슨 포켓.”

“하! 그럼 오늘 하루를 이대로 날리게 생겼네.”

 

메디슨 포켓이 잔뜩 비아냥대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또 무슨 요구를 하려는 걸까? 보고서를 두어야 할 자리에 내려놓은 플로렌스가 메디슨 포켓을 곁눈질했다.

 

“그럼, 석고는 있어?”

“석고는 충분할 거야.”

“그럼 그거라도 내놔. 동양의 의약에서 쓰인대서 그것도 연구할 생각이었거든.”

“···알았어. 따라 올래?”

“비품실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싶으면 그래도 돼.”

“할 일도 없잖아.”

“그럼 따라와.”

“흥.”

“착하지.”

“내가 개야?”

 

메디슨 포켓은 투덜대면서도 문을 나선 플로렌스의 뒤를 따라갔다. 


 


 

각종 광석과 토양의 샘플들이 즐비한 보관실에서는 친숙한 내음이 난다. 그리고 메디슨 포켓의 개에 가까운 특성—그러니까 속된 말로 ‘개코’인 그가 공기 중에서 튀는 부분을 캐치했다.

 

“원래 이렇게 흙냄새가 나나?”

“이런저런 샘플들이 있으니까.”

“아니야, 그거랑은 좀 다른 문제 같은데.”

 

메디슨 포켓의 고개가 불쑥, 플로렌스의 목에 가깝게 내밀어졌다. 예상치 못한 거리감에 플로렌스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랑곳하지 않은 비글이 계속해서 킁킁대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뭐, 뭐야?”

“너한테서 나는 냄새인데? 어디 흙에서 구르기라도 했어?”

“뭐? 무슨···아.”

 

플로렌스 본인은 진작에 익숙해져서 의식하지 못했지만, 플로렌스를 처음 보는 이들이 종종 그에게서 나는 특유의 흙 내음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 이야기일까?

 

“타고난 거야. 날 때부터 그랬어.”

“날 때부터 흙냄새가 났다고? 연구감이네.”

“아하하, 글쎄.”

“채혈해도 돼?”

“안 돼, 메디슨 포켓.”

“왜?!”

“나는···주사가 무섭거든.”

“하?!”

“아, 여기 있다. 석고 맞지?”

 

메디슨 포켓의 관심사를 돌리려는 듯, 플로렌스는 빠른 놀림으로 석고 샘플을 집어 들어 메디슨 포켓을 향해 내밀었다. 샘플을 받아 든 그가 입을 삐죽이더니 제 할 말을 내뱉었다.

 

“채혈.”

“안 돼.”

“왜!”

“싫다니까.”

“안 아프게 해줄게.”

“안 돼.”

“아!!!”

 

메디슨 포켓이 석고 샘플의 봉투가 찢어질 기세로 꽉 쥐고 앙탈에 가까운 볼멘소리를 냈다. 이 부분은 개, 보다도 어린아이에 가까운 모습이긴 하네. 플로렌스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네가 좀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생각해 볼게.”

“나는 항상 예의 발라.”

“보통은 다르게 생각할걸?”

“그건 바보들이나 그러는 거라고. 나 정도면 라플라스 평균이야!”

“······.”

 

플로렌스는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조용히 메디슨 포켓을 바라보았다. 라플라스에는 괴짜들이 넘쳐난다지만, 너만 한 예의를 갖춘 이는 얼마 없을걸. 그것도 다소 나쁜 쪽으로. 플로렌스의 그런 감상은 지극히 객관적인 판단이었지만, 그는 구태여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어차피 메디슨 포켓에게 시비를 걸어봤자 좋은 꼴은 볼 수 없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플로렌스는 딱히 호전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메디슨 포켓과의 관계에 딱히 흠을 낼 생각도 없었기에.

플로렌스의 시선을 받아치던 메디슨 포켓이 입을 삐죽이며 비품실 출구를 향했다. 자신의 용무는 끝났다는 듯이, 그는 플로렌스에게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약간 토라진 것 같기도 했다.

 

“같이 가, 메디슨 포켓.”

“흥.”

“삐졌어?”

“아니? 나는 나보다 멍청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어라 떠들든 신경 쓰지 않아.”

“내가 멍청하다는 거야?”

“그런 말은 안 했어.”

“그럼, 왜 삐졌어?”

“몰라!”

 

메디슨 포켓이 심술이 잔뜩 담긴 목소리와 함께 쿵쿵대며 복도를 걸어갔다. 비품실 문단속을 끝낸 플로렌스는 자연히 그의 뒤를 따랐고,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메디슨 포켓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플로렌스는 그 사실을 메디슨 포켓이 연구실의 문 앞에 멈춰 서서 빤히 바라본 순간 깨달았다.

 

“왜 따라와?”

“어? 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할 일 없어?”

 

메디슨 포켓의 불퉁한 목소리가 플로렌스에게 꽂혔다. 여전히 삐진 건가? 조금 유치하다고 느껴지는데, 조금이라도 기분을 풀어주는 게 좋을까.

 

“당장 할 업무는 아까 끝냈어. 서류 제출이 마지막으로 할 일이었거든.”

“너희 부서는 한가한 모양이네.”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래서, 내 연구실에서 노닥거리겠다?”

“···그래도 돼?”

“정 할 일 없으면 그러든지. 그런데 아무것도 손대지 마. 펜 하나라도 손 대면 쫓아낼 거야.”

“그래. 실례할게.”

“실례하든지 말든지.”

 

메디슨 포켓이 그렇게 대꾸하며 연구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것은 몇 발만 걸어가면 밟힐 법한 플라스크의 잔해였다. 메디슨 포켓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발을 지익 끌며 그 잔해를 옆으로 대강 치우며 안으로 걸어갔다. 그에 이어지는 탕약 사탕의 포장지와 막대, 찢어진 종잇조각, 휴지 조각, 민트맛···개 간식 포장지? 가만 보면 개껌의 잔해, 터그놀이용 장난감 따위도 널려 있었다.

 

“연구실에 실험용 강아지라도 둬?”

“무슨 멍청한 질문이지? 그딴 걸 왜 둬?”

“음, 역시 실험용 강아지는 다른 데에 두지···?”

“아니! 실험용 강아지가 도대체 무슨 개소리냐고. 나는 그딴 거 쓰지도 않고, 앞으로도 쓸 생각 없어!”

“어?”

“얼빠진 소리 내지 말고. 실험용 강아지가 비인도적이라는 건 깡통 대가리도 알아! 적어도 내가 생물학 부서장으로 있는 동안은 그딴 건 라플라스 내에서 전면 금지야. 내가 죽어도 금지하게 할 생각이고.”

“······좋은 포부네.”

 

이번에는 네가 경솔했어, 플로렌스 해링턴.

메디슨 포켓의 강아지에 대한 사랑은 얼핏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걸 면대면으로 마주할 일이 없었기에 막연하게 사랑스러운 생물이니 아끼는 정도겠지, 라는 생각을 조금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메디슨 포켓의 언동을 보아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인 듯했다. 이건···아가페에 가까울까? 강아지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 듯한 그의 눈빛. 플로렌스는 그렇게 금방 이해했다.

 

“기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어, 미안해. 바닥에 강아지 간식이나 장난감이 많길래 물어본 거였어.”

“다 써서 던져둔 거야.”

“네가?”

“그럼 누가 써?”

“그래도 치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가령 이 플라스크 잔해 같은 건 신발을 신었어도 잘못 밟으면 다칠걸?”

“그건 아마추어들이나 그런 거야.”

“내가 치울까?”

“뭐? 아까 내가 한 말 기억 안 나?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메디슨 포켓이 예의 석고 샘플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짜증을 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다소 누그러진 톤을 감지한 플로렌스가 바닥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가 뒤돌아서 실험이라도 한다면 몇 가지 정도는 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로 치워서 안 되는 건 아니고, 심술부리고 싶은 거잖아. 그 정도는 지나가던 강아지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메디슨 포켓은 단순했다. 플로렌스는 메디슨 포켓의 신경을 조금 돌리기 위해 다른 질문을 했다.

 

“석고로 뭘 할 거야?”

“해열이랑 소염 진통 효과가 있대서 마도학 약제랑 어떻게 접합할지 고민 중이야. 요즘 다른 문화권에서 약에 사용되는 광물이나 암석들에 관심이 생겼거든. 호박도 소염 진통 효과가 있지만 없으니까 아쉬운 대로 다른 것부터 해야지.”

“그런 효능은 못 들어봤는데, 신기하네.”

“너는 이쪽 부서면서···됐다, 약학에 관심 없으면 알 리가 없지.”

 

보안경을 쓰며 비커에 석고 가루를 계량하던 그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원래 사람이란 자신이 특출난 분야가 제각각이고, 그 외로는 재능이나 지식이 마이너스에 수렴할 수도 있는 법이다. 메디슨 포켓은 그렇기에 자질구레한 설명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실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실험에 집중하기 시작한 메디슨 포켓은 말이 없어졌고, 플로렌스가 왔다 갔다 해도 신경 쓰지도 않는 지경에 빠진 듯했다. 플로렌스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몸을 굽혀 잡동사니와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메디슨 포켓의 귓가에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바닥에 있던 플라스크의 잔해는 깨끗하게 쓰레기통에 담겼고, 탕약 사탕의 흔적 역시 깔끔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지났을 때, 메디슨 포켓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황급하게 소파에 자리 잡은 플로렌스가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메디슨 포켓?”

“당장 나가!”

“어?”

“빨리!”

 

플로렌스는 설명을 들을 새도 없이 그렇게 메디슨 포켓의 손에 등이 떠밀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연구실 밖으로 나온 지 정확히 7초 후, 연구실이 폭발했다. 폭발한 연구실을 망연히 바라보던 플로렌스의 곁에서 메디슨 포켓이 혀를 찼다.

 

“쯧!”

“터···터진 거야?”

“소화기는 저쪽에 있어. 빨리!”

“아, 알았어!”

 

플로렌스가 부리나케 메디슨 포켓이 가리킨 방향으로 뛰어갔다. 메디슨 포켓은 반대쪽의 소화기를 들고 능숙하게 불을 끄기 시작했다. 플로렌스가 소화기를 들고 왔을 때는 그가 이미 불을 절반 정도 끈 상태였다. 뒤늦게 작동한 스프링클러가 나머지 불씨를 꺼냈고, 메디슨 포켓은 그대로 소화기를 내던졌다.

 

“젠장, 샘플도 들고나와야 했는데!”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멍하니 있는 플로렌스와 바닥에 앉아 있는 메디슨 포켓의 곁에 구두 굽 소리가 다가왔다. 라플라스의 연구원이라면 익숙한 이가 그들의 옆에 멈춰 섰다.

 

“메디슨 포켓 연구원, 오늘도 연구실을 터트린 건가?”

“루시 씨?”

“뭐야, 깡통. 할 일 없어? 하루이틀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이번에는 급여에서 감봉이야, 메디슨 포켓 연구원. 당신이 이번 달에만 10번째로 터트린 실험실의 복구 비용은 더 이상 라플라스에서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마음대로 해, 깡통. 실험 예산만 안 줄면 되니까.”

 

퉁명스러운 비글의 대답에 로봇은 통보 전달이 잘 된 것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고, 복도에는 다시 두 사람만이 남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메디슨 포켓의 만행을 바로 옆에서 관람한 플로렌스의 낯이 질려 있었다. 그게 소문이 아니었구나. 연구실을 터트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런데 감봉될 정도로 터트리는 게 사실이라고? 정말 겁도 없네. 플로렌스는 새삼스럽게도 이 괴팍한 괴짜인 친구의 존재가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너털웃음으로 이어졌다.

 

“웃겨?”

“아니, 음, 그래. 웃긴 것 같아.”

“나는 급여 감봉됐다고.”

“자업자득이야, 메디슨 포켓. 하지만 너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한 건···나쁘지만은 않은 경험이네.”

“무슨 소문?”

“네가 밥 먹듯이 연구실을 터트린다는 거.”

“쳇.”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메디슨 포켓의 배꼽시계는 정확했다. 옆에서 크게 난 꼬르륵, 하는 소리에 플로렌스가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때구나. 메디슨 포켓과 있으면 말도 안 되게 황당한 사건으로 시간이 순식간에 가는 것 같다. 웃음을 겨우 거둔 플로렌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덕분에 간만에 웃었어.”

“고마우면 밥이나 사지?”

“그럴까? 내가 최근에 찾은 스테이크 가게가 괜찮아.”

“당장 가자.”

 

앞서 토라졌던 것은 깨끗하게 잊은 메디슨 포켓이 복도에서 벌떡 일어났다. 뻔뻔하지만 밉지 않은 친구에게 그 정도 대접은 당연히 할 수 있다. 플로렌스는 제법 유쾌해진 마음으로 그와 함께 라플라스를 나섰다.

© 2026 hako | updated 2026. 4. 13.

bottom of page